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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대한민국 대표 중식 대가 여경래 셰프가 충격적인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털어놓았다.
동생인 여경옥 셰프는 35년간 청와대 출장 대통령 식사 담당을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여경옥 셰프는 24년 간 S호텔 수석 셰프로 근무하기도 했다. 조리직으로는 업계 최초, K호텔 이사로도 일했다.
오직 '금쪽상담소'를 위해 형제가 직접 요리를 해주기로 했다. 45년차와 48년차의 요리, 여경옥 셰프는 "오늘은 제가 보조다. 모자새우는 형한테 안된다"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새우의 맛에 모두 '진실의 미간'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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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래는 "어릴 때 제가 잘못해서 어머니께 맞고 있으면 '형이 잘못한 건 나 때문이다'라고 감싸줬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은 거 같다"라 했고 여경옥은 "제가 그렇게 하면 어머니가 마음이 아파서 더 못때리시지 않냐"라며 끈끈한 형제애를 보였다. 오은영 박사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형제의 우애.
박은영 셰프는 "설 연휴 끝나고 호텔에 출근했는데 불이 났던 거다. 하루아침에 가게 문을 닫게 됐다"며 15년간 운영했던 레스토랑. 1억 원어치 물건들을 단돈 100만 원에 처분해버린 형제에 대해 언급했다. 덮어버린 일을 계속 얘기하면서 미련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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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박사는 좋았던 기억만 추억하는 '므두셀라 증후군'에 "살면서 어린 시절에는 다 힘든 게 있다. 므무셀라 증후군이 있으면 그 시절을 미화한다"며 형제의 어린시절에 대해 물었다.
여경래 셰프는 "어린시절 '극빈자 가족'이었다. 심각하게 가난했다. 제가 6살, 동생이 3살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는데 당시 막걸리 장사를 하셨다. 동생과 저는 먹을 게 없어서 막걸리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도 했다"라 말문을 열었다.
화교학교는 학비를 내야 했지만 낼 수가 없었고 잡비조차 못 냈다고. 여경래는 "여름 교복을 입어야 하는데 사줄 돈이 없어서 저 혼자만 사복을 입고 등교했다. 담임선생님이 제 사정을 알고 반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름교복을 사주셨다. 철 없는 시절에 어머니께 자랑을 했었다"라 했다.
여경래는 "12월 겨울날 영화를 보러 나갔는데 어머니와 저를 먼저 버스에 태우고 아버지가 뒤에 오시는 걸 제가 보고 있었는데 차가 와서 아버지를 치더라. 아직도 6살 때 한 얘기가 기억나는데 '엄마, 아버지가 죽었어'라 했다. 오래된 이야긴데"라며 눈앞에서 아버지의 사망 사고를 목격한 아픔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여경래는 "얘기하다보니 조금 격해진다"라며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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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옥은 "나는 형이 운줄도 몰랐다. 저는 형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나 했다. 형이 먼저 했으니 순응했다. 16살에 일을 막 시작했는데 배달과 주방 설거지를 했다. 원래는 형제가 일을 못하는데 주방장님의 배려로 같이 일을 했다. 그렇게 힘든줄 몰랐다. 그게 내 길인가보다 했다"라 웃었다.
오은영 박사는 "여경래 셰프님은 '근원적 수치심' 때문에 더욱 긍정적으로 사신 것 같다. 이해심이 많은 나로서 존재해야 비로소 나는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거다. 결국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라 분석했다. 여경래 셰프는 "살아오면서 확신이 없었는데 박사님 얘길 들으니 앞으로 더 그렇게 해야할 것 같다"라며 반전 소감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오은영 박사는 "두 분은 정말 자수성가를 하셨다. 대단하시다. 정말 존경을 표한다"며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shy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