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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인터뷰] "잠 못드는 드라마, 됐나요?"..정서경 작가, '작은 아씨들'로 만나는 반성과 자신감(종합)

문지연 기자

기사입력 2022-10-20 12:19 | 최종수정 2022-10-24 07:22


사진=tvN 제공

[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잠 못 드는 드라마, 악몽 꾸는 드라마 하고 싶었어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그리고 '헤어질 결심'까지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는 늘 그의 손길이 있었다. 드라마 '마더'는 정서경 작가의 첫 드라마 대본 도전작.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던 그 작품 이후 약 5년 만에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정서경 극본, 김희원 연출)로 돌아왔던 그는 파격적인 스토리와 남다른 필력으로 시청자들을 자신만의 세계에 옭아맸다.

9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한 '작은 아씨들'은 700억원이라는 거금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 끝에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 세 자매가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라난 결말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다소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으나, 정서경 작가는 이에 대한 뜻을 직접 전하는 시간을 갖고 시청자들을 납득시켰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서경 작가는 "요즘 드라마들은 사람들이 핸드폰도 보고 밥 먹으면서도 보고 왔다 갔다도 한다. 그런데 우리 드라마는 '화장실에 못 가는 드라마'였다더라. 보고 나서 '씻고 자자' 하는 드라마 말고, '잠을 못 자겠다'하는 드라마, 잠을 잤는데 악몽을 꾸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몇 몇 분들은 악몽을 꾸더라. 돈은 피 같은 것처럼 마음에 박히고, 유년기에 엄마 아빠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그대로 너무 무서워서 나오는 것 같다. 원형적인 이미지들로 잠을 못 들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더' 이후 두 번째 작품이었고, 벌써 3년 전에 이 작품을 구상해뒀었다. 정서경 작가는 첫 도전이던 '마더'의 대본읠 썼을 때보다는 그래도 "조금 낫다"며 드라마적 작법을 어느 정도 깨우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 16개, 12개의 이야기를 써봤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만들어내게 될 시리즈물들에서는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정 작가는 "'작은 아씨들'을 쓰면서 자신이 없어지는 시간이 있었는데, '마더'를 보면서 '이렇게 좋은 장면들을 썼었는데' 싶었다. 예를 들어 영신과 홍이가 만나는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썼지?' 싶기도 했다. 연기자 분들이 잘해주셔서 볼 때마다 좋더라. 지금도 어렵지만 쓸 수 있겠지 싶은 생각을 하며 썼다. '작은 아씨들'도 언젠가 그런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은 아씨들'은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궁금증과 의문, 그리고 찬반의 여부를 남겨준 작품이었다. 원령가를 통해 흘러나온 비자금 700만원을 최종회에서 자매들이 나눠 갖게 되는 결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고, 가난에 대한 이야기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얘기했다는 점에서도 보는 시청자들의 상처와 치부를 건드렸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정 작가는 이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해하며 자신의 글을 담담히 설명했다.


사진=tvN 제공
사실 '작은 아씨들' 속 가난의 이미지들은 정서경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느껴왔던 부분들. 20대 시절 감독의 꿈을 꾸며 살았던 가난한 자취방 등은 '작은 아씨들'의 무대가 됐다. 정서경 작가는 "가난을 말할 때 돌려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가난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당사자가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과도 같은 것들이었다고.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들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쓴 대사였다고 한다. 정 작가는 "그런데 한편으로는 준비가 되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그것들이 또 다른 외부에서 보는 시선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상처가 됐다는 댓글들이 마음이 아팠다"는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가난'에 대한 다양한 묘사들은 정서경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 20대 시절 친구와 함께 살던 방이 세 자매의 방과 비슷했다고. 그는 "비뚤어진 천장이 달린 곳도 있었고 방충망도 없었다. 안 그래도 친구와 만나서 '우리 그때 방충망 왜 안 달았지?'했었다. 여름에는 모기가 들어올 것 같은데, 그냥 불 끄면 모기 안 들어오겠지 싶어서 불을 끄고 맥주를 마시고는 했다. 젊어서 그랬는지 좋은 기억뿐이다. 거기서 나눈 대화들과 우리의 가난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미래와 그런 것들이 좋았고, 회고적이고 로맨틱한 느낌으로 다가간 것이 시청자들에게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고 했다.


결말에 대한 의견도 많이 나뉘었다. 세 자매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정서경 작가는 "처음 기획할 때 아주 초창기에 tvN 드라마는 돈을 나눠주고 끝나면 안 된다고 하더라. 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저희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니 법적으로 돈이 처리될 경우에 그 돈이 처음 횡령했던 곳으로 돌아가서 대체로 원령가와 난초협회로 돌아가고 세금을 떼고 사법처리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관련자는 죽었거나 처벌을 받고 있고, 돈이 일단 그렇게 돌아가는 결말이 맞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납득될 만한 사연들도 있었다. 친구와의 대화도 정답이 됐다. 정 작가는 "처음엔 친구와 대화하는데 내가 '주인공이 20억원을 얻었다가 뺏기고, 그 다음에 700억원을 얻었다가 포기를 하는 얘기를 할까봐. 짜릿할 것 같지 ?訪?'라고 했더니 '미쳤냐'고 했다. '12시간 동안 그거 보려고 고생했는데 그걸 뺏어간다고?'라고 하더라. 맞다. 내가 작가로서 책임감이 있고, 꼭 주인공에게 돈을 주겠다 했다. 대신 이 돈이 어떤 돈인지 확실히 알게 해보자 싶었다. 처음 욕심낸 시점에 부자가 되길 꿈꿨다면, 마지막에 이 돈이 무슨 돈인지 알았을 때는 어떤 일을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단팥빵 몇 개 사고, 화장품 몇 개 사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기 보다는 이 돈의 무게를 아는 30대 여성 인간으로 행동할 느낌이었다"고 말해 시청자들을 납득시켰다.


사진=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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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인경이 100억원 수령을 앞두고 '승낙'과 '거절' 사이에 놓인 장면이 그려지기도. 이에 "인경이는 돈을 받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정 작가는 "안받았을 때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 것 같다. 인경이도 이 돈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아서 자매들이 상의하지 않았을까. 세 자매 모두에게 할일이 많아진 느낌이 들 거 같다.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30대가 돼도 어리다는 느낌을 받고, 책임과 권한을 갖는 것이 많지 않은데 돈의 크기가 원상아를 비롯한 악한 세력에게는 돈이 곧 권력이고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이런 권한과 힘이 연약하고 작았던 주인공에게 돌아왔을 때 어떤 의미에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기대가 됐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에게 '사약 로맨스'를 걷게 했던 오인주와 최도일(위하준)의 관계도 '사랑'이라 정의했다. "두 사람이 결말 이후 다시 재회했겠느냐"는 질문에 정 작가는 "당연하죠. 그 말 하려고 나온 건데요"라며 시원하게 웃었다. 그는 "입 밖에 나오는 건 다 이제까지 실현이 됐잖나. 당연히 또 볼거니까 '또 봅시다'라고 했겠지. 일단은 돈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 했다. 인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었지 이 긴박한 순간에 위기를 같이 넘겼기 때문에 사귀거나 그러지는 않고 싶었을 것이다"고 밝혀줬다. 이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당연히 만났다. 다만 이야기의 장르가 달라져서 그걸 못 썼을 뿐"이라며 "제 생각에는 인주는 한국을 안 떠났을 것 같다. 소중한 나의 집이 있는데 떠나지 않았을 것 같고, 도일이 와서 만났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서경 작가의 바람대로 '작은 아씨들'은 깊은 여운을 남긴 드라마가 됐다. 심지어 함께 많은 작품을 해왔던 박찬욱 감독도 본방을 사수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정서경 작가는 "제가 '헤어질 결심' 촬영장에 찾아갔는데 대본을 보내달라더라. 저희 원래 그런 사이 아니다. 보지 않고, 봤어도 코멘트하지 않는데, 제가 보내드렸다. 영화 쓸 때랑 드라마 쓸 때랑 다르고 감독님이 까다로워서 한 마디를 할 것 같았는데 진심으로 좋아해주시고 중간 중간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내셔서 묵살하느라 혼났다. 그리고 토론토 영화제에 가서 만났는데, 감독님이 너무 바쁘시다 11월부터 촬영을 하셔야 하는데도 당일 아침에 토론토에 와서도 3~4부를 다 챙겨보시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서경 작가의 차기작은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전망. 정 작가는 "나이가 더 든 주인공에 남자 캐릭터도 중요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썼던 것을 잊지 않고, 잘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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