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어떤 길을 제시할까?' '엘리온' 출시에 담긴 의미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20-12-14 06:00



'어떤 길을 보여줄까?'

크래프톤의 개발 자회사 블루홀스튜디오가 개발한 온라인 MMORPG '엘리온'이 지난 10일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논타깃팅 전투가 특화된 온라인 MMORPG '테라'를 만든 블루홀이 무려 9년만에 선보이는 신작이기에 관심은 당연히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앞서 블루홀이 2017년 선보인 '배틀그라운드'로 글로벌 빅히트를 기록하며 기업 규모를 키워 크래프톤이라는 모회사로 한데 뭉치게 됐고, 이 크래프톤이 내년 IPO(기업공개)를 예정하고 있기에 '엘리온'에 거는 기대감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엘리온'이 온라인 MMORPG로선 국내에서 최초로 사전 패키지를 구매해 접속하는 '바이 투 플레이' 방식을 채용한 점, 자체 서비스가 아닌 카카오게임즈를 퍼블리셔로 앞세워 국내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도 함께 나간다는 점, 여기에 한국산 온라인 MMORPG의 명맥을 이어가며 글로벌 성공 여부에 따라 여타 개발사에게도 자극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 등 국내 게임업계에 다양한 이정표를 남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분명 주목할 만한 신작임은 분명하다.


개발 명가 이미지 이어줄까

크래프톤은 산하 개발 스튜디오를 모두 합친 통합 법인을 지난 1일 새롭게 출범시켰다.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펍지주식회사를 흡수 합병하고 펍지 스튜디오, 블루홀스튜디오, 라이징윙스,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 등 4개 독립 스튜디오 체제에서 다양한 장르의 IP를 만들어내며 '개발 명가'로 거듭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배틀그라운드'의 탄생 주역인 김창한 펍지 대표가 통합 크래프톤의 첫 수장으로 임명된 것은 이를 의미한다. '엘리온'이 작품 자체로 갖는 상징성은 여기에 있다.

당초 '엘리온'은 개발 초기에는 다소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콘텐츠를 지향했지만, 여러번의 비공개 테스트와 시장 및 유저의 반응을 반영해 기존 MMORPG의 문법에 좀 더 근접한 안정성을 택했다. 원래의 게임명인 '에어(A:ir)'라는 것에도 나타나듯 공중 전투를 핵심 요소로 잡고 스팀펑크 스타일을 추구했지만, 이를 거의 줄이는 대신 대규모 전투의 완성도를 높였다. 또 '테라'를 통해 장단점을 파악한 논타깃팅 전투를 더욱 발전시켰고, 수천 가지의 기술을 조합할 수 있는 '스킬 커스터마이징', 진영간의 경쟁을 펼치는 사냥터인 '차원포탈', 길드 콘텐츠인 '클랜전'까지 MMORPG의 재미 요소를 잘 조합하고 개선시킨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공중전과 SF 등의 요소가 국내 유저들에겐 여전히 큰 인기를 받지 못하는 콘텐츠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해 좀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기 힘든 온라인 MMORPG 개발의 현실을 반영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배틀그라운드'가 기존에 마이너한 장르로 꼽혔던 배틀로얄 모드의 대중화를 이끌며 글로벌 빅히트를 기록했고, 결국 지금의 크래프톤을 다시 일으킨 작품이란 것을 감안하면 분명 아쉬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배틀그라운드'가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가 아니라 기존의 게임 내 모드를 글로벌 인재들과의 협업을 통해 확장시키고 완성도를 높여 시장에서 통했다는 부분은 '엘리온'의 개발 과정에서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지난 11일 '더 게임 어워드'에서 공개한 탑다운 슈팅게임 '썬더 티어원'과 서바이벌 호러 게임 '칼리스토 프로토콜' 등 특이하고 도전적인 신작에서 보듯 스튜디오 특징에 따라 개발의 방향성을 가져간다는 점에선 '엘리온'의 회사 내 위상을 짐작케 해준다.


크래프톤에서 개발중인 신작 '썬더 티어

크래프톤 산하 스튜디오인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에서 개발중인 '칼리스토 프로토콜'
새로운 BM 통할까

요즘 게임 서비스에서 작품성 및 완성도만큼 중요한 것은 BM(비즈니스 모델)의 설계와 운영이다.

기존 온라인 MMORPG는 한달에 일정 사용료를 지불하는 정액제에서 벗어나 일단 게임을 무료로 접속하는 대신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유저들이 게임 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모바일 MMORPG의 경우 사용료와 시간을 맞교환하면서 동시에 일정한 행운도 누릴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 판매가 대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델의 경우 좋은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아무래도 높지 않기에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게임계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확정형 아이템을 판매한다든가 혹은 많은 시간을 들일 경우 모든 아이템을 구매할 기회를 제공하는 '플레이 투 윈'(Play to Win)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각자의 장단점과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온'은 콘솔게임 패키지 판매와 비슷하게 이용권을 구매하는 대신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바이 투 플레이'(Buy to Play) 방식을 국내 대형 온라인 MMORPG 가운데 처음으로 도입했기에 이런 새로운 BM이 향후 게임산업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일단 초반 출발은 괜찮다. 오픈 단계에서 3개의 서버를 열었는데 대기열이 발생하며 1개 서버를 더 추가했고, 게임트릭스 기준 PC방 사용시간에서 첫날 전체 20위(점유율 0.38%)에서 첫 주말인 12일 19위(0.5%)를 기록하며 점유율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 BM의 특성을 감안하면 서서히 유저의 수와 사용시간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델의 도입을 이끈 것은 물론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때문이다. 굳이 현지 퍼블리셔나 판매 루트 없이도 온라인으로 쉽게 온라인 혹은 콘솔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즐길 수 있게 해준 스팀과 같은 글로벌 오픈마켓이 이미 대중화 돼 있고, 이런 플랫폼의 판매 방식에 따라 사전 체험판(얼리 억세스)으로 출시한 '배틀그라운드'가 대박을 친 것에서 보듯 이미 보편화된 BM이라 '엘리온'으로선 해외 시장 진출을 할 때도 용이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해외 퍼블리싱도 담당하는 카카오게임즈는 '엘리온' 출시 직후 영어 등 4개국어로 된 홈페이지를 공개하며 내년 북미와 유럽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직관성이 높은 FPS게임과 달리 MMORPG는 언어와 문화, 지역별로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현지화 작업을 담당할 퍼블리셔가 반드시 필요한 가운데, 이를 맡게된 카카오게임즈가 첫 글로벌 퍼블리싱을 얼만큼 성공적으로 이끌지도 관심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적어도 10여년전까지는 '온라인 MMORPG의 종주국'이라는 자랑스런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작품성과 양적인 면에서 그리고 트렌드의 변화로 인해 이런 자부심이 거의 의미가 없어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온'이 명맥을 이어가면서 다른 국내 게임사들에게도 희망과 과제를 줄 수 있다는 가장 본질적인 면에서도 분명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공적 IPO 이끌까

크래프톤이 기존 대형 게임사들과 완전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내년 IPO의 성공이다. 적어도 상장 이전까지는 '엘리온' 이외에는 신작이 없다는 점에서 그 기대치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배틀그라운드' IP를 제외하곤 회사 내에서 다른 IP들의 매출 기여도가 미미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위험성을 해소할 다양한 라인업 확보를 위해서라도 '엘리온'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이 필수적이다. 크래프톤은 장외시장에서 주당 160만원 이상을 넘다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인도에서 서비스 차질을 빚는다는 소식에 130만원대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엘리온'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170만원대를 돌파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가장 뜨거운 장외주로 꼽히고 있다. 11일 장외가인 161만원 기준으로도 시가총액이 13조원을 넘는 가운데, '엘리온'까지 매출에 가세한다면 이 몸값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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