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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은 하루아침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신선한 설정과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스토리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미스터리 속으로 끌어당긴다. 미스터리의 중심에 놓인 형구라는 인물을 통해 타인이 규정하는 삶과 자신이 바라보는 사람, 그 간극에 놓인 사람의 고독과 외로움을 신선하게 그려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끝난 후에도 깊은 사색에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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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배우로서 출연작의 개봉을 앞두면 평가를 앞둔 기분이지만, 그건 캐릭터와 연기에 한정된 평가다. 이번 영화는 내가 연출에 시나리오까지 쓴 것이기 때문에 나의 전체를 평가받는 기분이다"며 "이 영화는 내가 빼어난 연출력을 가져서 시작한 게 아니라 나의 진심을 투박하게 다가가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다. 정말 연출은 또 다른 영역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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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장률 감독님이나 홍상수 감독님의 독립 영화 출연을 많이 해왔다. 그런 작품에 출연하면서 영화라는 게 꼭 거대 자본이 아니라 적은 자본으로도 정성과 진심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첫 연출을 하면서 힘들지만 행복했다. 며칠 끙끙 대며 글을 쓰다가 풀리는 순간 쾌감이 있었고 촬영하는 순간도 어려웠지만 행복했다. 후반 작업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배우면서 하는 과정이 행복했다. 하지만 개봉을 앞두니까 굉장히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연출에 도전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준 영화인이 있냐는 질문에 정진영은 의외로 '김창완 선배'라는 답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물론 많은 감독님과 배우들을 존경하는데, 제가 연출의 꿈을 스물스물 갖게 된 게 '화려한 유혹'이라는 드라마 이후부터다. 그때 김창완 선배와 연기를 했는데, 김창완 선배님이 내게 자극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 선배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쭤보니 대학교 때 기타를 배우셨고 그때부터 하신 거라고 하더라. 본인은 비틀즈도 안 들어봤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음악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다. 저런 훌륭한 아티스트가 대학교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싶었다"며 "그동안 연출에 도전하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내가 체계적인 연출 학습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창동 감독님의 '초록물고기'(1997)에서 연출부 막내로 참여하긴 했지만, 사실 막내가 무엇을 해봤겠나. 그런데 김창완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거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용기를 낼 수 있던 계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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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정 감독은 "이준익 감독님이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걸 아셨지만 보여드리지는 않았다. 감독님의 의견이 들어가면 안 될거라 생각했다"며 "물론 불안한 것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뚝심 있게 가고자 했다. 처음으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주연배우 조진웅 씨였다. 초고를 쓰지 마자 보여줬는데 하루 만에 출연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시나리오가 어렵지 않냐고 물으니 '뭐가 어렵냐. 딱 내 이야기인데'라고 하더라"며 "한다고 결정해준 것도 고마웠는데, 내 이야기를 믿어준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그제서야 이준익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보여드렸다. 조진웅이라는 배우를 캐스팅 하고 나니까 어깨가 으쓱해지더라. 감독님이 보신 후 좋은 시나리오이지만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평가가 엇갈릴 테니까 그건 감당해야 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선배 배우의 작품이기에 후배에게 출연을 강요할 수 없었다는 정 감독은 "'너 내가 하라고 해서 한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도 '내가 미쳤습니까. 그런거 따지면 제가 출연해야 할 작품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진웅씨가 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주지 말까라고도 생각했다"며 "하지만 주인공 형구가 조진웅 씨를 모델로 쓴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주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일단 시나리오를 줬다. 그러고 하루 만에 하겠다고 하니까 용기를 얻었다. 정말 고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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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경험이 앞으로의 연기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진영은 "아무리 연기를 해도 아무리 좋은 배우랑 연기를 하도 배우는 자기 연기만 보게 된다. 그런데 모니터에서 떨어져서 배우들의 연기과정을 A부터 Z까지 보게 된 거다. 우리 배우들의 훌륭한 과정을 봤으니 큰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저는 배우 할 때 감독 말을 굉장히 잘 듣는 배우다. 그래서 감독님들이 저를 좋아한다. 결국 배우는 그 캐릭터에 대해 100을 알고 있다고 하면 감독은 그 캐릭터에 대해서는 10을 알거다. 하지만 그 작품에 대해서는 감독이 100을 알고 배우는 10을 한다. 그래서 감독이 내 작품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걸 파악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저는 감독님을 철저하게 믿는 편이다"며 자신의 연기 스타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어서 첫 연출작에 직접 출연을 할 생각은 없었냐고 묻자 그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며 웃었다. "초보 연출자가 만들어나가는 것도 급한데 출연까지 하면 이도저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제가 '초록물고기'에서 연출부 막내를 하면서 연기를 했는데, 굉장히 후회했다. 하나 하기도 벅차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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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진영 감독이 메가폰을 '사라진 시간'에는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 신동미, 이선빈 등이 출연한다. 오는 18일 개봉.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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