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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슬감빵' 염반장→'그기억' 문성호..주석태 "없던 惡까지 대출"

문지연 기자

기사입력 2020-05-21 10:03


사진=탄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배우 주석태(44)가 '악역의 정점'을 찍었다.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김윤주 윤지현 극본, 오현종 이수현 연출)은 주석태가 많은 에너지를 쏟아낸 작품이다. 그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더해 그 후의 것들까지 대출해서 사용한 느낌"이라며 '그 남자의 기억법'을 기억했다.

'그 남자의 기억법'은 과잉기억증후군으로 1년 365일 8760시간을 모조리 기억하는 앵커 이정훈(김동욱)과 열정을 다해 사는 라이징 스타 여하진(문가영)의 상처 극복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로, 주석태는 극중 두 사람 모두에게 과거의 아픔을 줬던 인물 문성호를 연기하며 극에 긴장감을 더했다. 문성호는 과거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마주친 정서연(이주빈)의 친절을 사랑으로 오해하고 결국엔 서연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다 실패했던 인물. 징역을 선고받은 뒤 치료감호소에 갇혔다가도, 이정훈에게 복수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며 극에 극도의 긴장감을 심은 바 있다.

극악무도했던 악역인 문성호를 연기한 주석태는 "사실은 이렇게까지 오래, 악하게 나오게 될 줄 몰랐다"는 소감을 먼저 전했다. 그는 "처음 4부 정도의 대본을 먼저 받았을 때에는 그저 그런 빌런인 줄만 알았다. 어쨌든 드라마의 결은 로맨스 드라마고, 어느 정도 주인공들의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일거라고 생각한 거다. 처음엔 만만하게 봤는데, 살인 장면이 그렇게 자세히 묘사될 줄 몰랐고, 병원에 갇히고 자해하고 탈출하는 것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회가 이어지며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연기를 하는 게 벅차다는 부담이 아니라, 대본에 대한 놀라움이 계속해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정훈과 여하진에게 모두 상처를 줬던 악역이자, 세월이 지나도 이정훈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던 인물인 문성호였기에 주석태의 연기는 매회 소름을 유발했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도 '극혐(극히 혐오)'을 외칠 정도로 주석태의 연기는 현실감이 넘쳤다고. 주석태는 "마지막에 유골함을 꺼내는 장면을 연기할 때에는 그곳이 제발 세트장이길 바랄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 납골당에서 촬영이 이뤄졌고, 그 홀 안에서 애틋한 문구들 속에서 제가 그런 연기를 해야 하다 보니 잠들어계신 분들께 너무 죄송했고, 다른 방향으로는 배우로서 너무 외로웠다. 마음이 많아 아팠다"며 "문성호는 일부러 많이 나쁘고 못되고, 또 더럽고 지저분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유골함에 키스를 하던 장면도 사실은 애드리브인데, 굉장히 진하게 했다. 대본에는 원래 '본다' 정도였는데, 유골함을 보는데 이름이 뒤로 돌아가 있더라. 그래서 인사를 하면서 입맞춤을 한 번 했던 거다. 강아지들을 화장하고 보내면서 '고생했어'하고 뽀뽀도 해주고 보냈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그 장면에서도 나온 셈이다. 그 장면을 보던 스태프들도 경악을 했다. '잘했어'라고 하지만, 결국엔 '어우'라며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사진=탄엔터테인먼트 제공
악역이던 문성호는 결국 죽음도 자유도 얻지 못한 채 식물인간이 되는 결말을 맞았다. 이 장면도 주석태는 "완벽했다"고 평했다. 그는 "너무나 완벽한 결말이었다. '죽거나 감옥을 가거나'였는데, 영원히 고통을 받는 단계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처음부터 작가님은 그런 생각을 하셨을 거다. 회사에서도 16부 끝쯤에 잠깐이라도 회상이나 식물인간 상태에서 손가락을 까딱하는 컷 정도는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어본 적 있는데, 저는 '있어도 안되고, 있어도 안 찍겠다'고 했었다. 문성호는 여기서 끝이 나야 하고, 죽어야 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단호히 말했다.

스스로 연기한 악인이지만, 끝까지 악역에 대한 이해를 못하겠었다고 말한 주석태는 "역할로는 이해를 하겠지만,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99%의 정상인들이 1%의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문성호는 외로워서 그렇게 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작가 지망생이지만 데뷔를 못했지 않나. 가족도 멀리 있을 거고, 도움도 받았을 거다. 나이가 차오르니, 자의든 타의든 도움을 못받게 됐을 거고, 진상손님도 만나면서 자존감도 떨어졌을 거다. 낮에는 아름다운 작품을 찍고 작가가 됐지만, 그 한 시간 뒤에는 바코드를 찍고 있으니 자괴감이 들었을 거다. 지금 우리 배우 지망생들도 그런 삶을 사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 친구들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10년이 넘는 무명생활을 버틴 주석태는 이 시기를 이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무명 때 '구세주'라는 영화에서 대사가 한 마디였는데도 수없이 버벅였다. 그때 앞에 계시던 백일섭 선생님, 김부선 선배님, 박준규 선배님이 '괜찮아 천천히 해. 신인 때는 그래'라고 하시는 거다. 저는 그 말을 아직도 못 잊고 있다. 이 한 마디로 제가 2~3년을 버틸 수 이었고, 그 말로 '신인 때는 원래 떠는구나'하면서 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 말 한 마디가 나를 버티게 하고 단역을 몇 개를 더 하게 했던 것"이라며 "정서연에 대한 문성호의 마음도 그랬을 거다. 만약에 어떤 남성분이 그렇게 말을 해줬다면, 의형제가 되고 그랬겠지만, 예쁜 정서연이 그러니 사랑으로 가버린 게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워낙 강렬한 악역이었기 때문일까, 주석태는 향후 몇 작품은 악역을 피하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그는 "향후 몇 년 간은 악역에 대한 갈증이 없을 것"이라며 "있는 거 없는 거에 어디서 대출까지 해와서 감정을 쏟아낸 기분이다. 제가 할 수 있는 깜냥은 딱 납골당 전까지였고, 그때부터는 사실 저도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어딘가에서 집중력을 대출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충전을 해야만 악역을 또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사진=탄엔터테인먼트 제공
실제로 그럴 정도로 주석태는 지난 몇 년간 악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염반장으로 출연해 박해수를 지독하게도 괴롭혔고, 그 이후로도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주석태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후로 삶이 바뀐 느낌이 확실히 든다. 오디션이 사라졌고, 저에게 많은 관심도 보여주셨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했던 연기를 잘 못 보겠더라. 제 연기를 제가 부끄러워서 못 볼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을 마치고 있는 신원호 감독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시즌1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함께하지 못했지만, 시즌2에서 필요하면 부르겠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지금 드라마도 너무 잘 보고 있는데, 조금의 여지라도 있다면 단역이라도 이미지 A/S를 좀 해주시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다. 감독님만이 저의 이미지를 바꿔주실 수 있을 거 같다. 쓰레기 청소부든 의사든 어떤 역할이든 불러만 주신다면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주석태는 특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오디션장에서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어줬던 이우정 작가와 신원호 감독을 '인생 사람'으로 표현했다. '인생작'과 '인생캐'를 만나게 해준 '인생 사람'들이라는 말. 지금의 주석태를 만든 작품이었던 만큼 진한 추억으로 남았다는 얘기다.

영화 '구세주'(2006)로 연기생활을 시작해 10년의 무명을 견뎌낸 주석태는 이제 시작이다. 악역으로 정점도 찍었으니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주석태는 "밝고 재미있거나 소시민들의 아픔을 다루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는 염반장이나 문성호에 이르기까지 허구에 가까운 인물들을 연기하다 보니 허공에 헤엄을 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연기가 그렇지만 확신이 들지를 않더라. 순수 창작 연기다 보니까. 이게 맞는 것인지 비교 대상도 없었고, 확신이 없었는데, 현실적인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주연 욕심도 크게 없다. 좋은 배역을 만나기만 하면 만족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 울림이 있다. 주석태는 "시청률과 주연은 하늘이 내려주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러나 걱정은 있다. 과연 제가 덜컥 주연이 됐을 때 긴 호흡을 책임감 있게 끌고갈 수 있을까. 그것도 도전인데 어떻게든 하겠지만, 미지의 세계라 궁금한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주석태의 올해도 역시 바쁘다.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tvN '구미호뎐'의 출연을 앞두고 있고, 12월에는 야심차게 연극도 올릴 예정이다. '악역'으로 재발견된 주석태의 미래가 더 밝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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