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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배우 주석태(44)가 '악역의 정점'을 찍었다.
극악무도했던 악역인 문성호를 연기한 주석태는 "사실은 이렇게까지 오래, 악하게 나오게 될 줄 몰랐다"는 소감을 먼저 전했다. 그는 "처음 4부 정도의 대본을 먼저 받았을 때에는 그저 그런 빌런인 줄만 알았다. 어쨌든 드라마의 결은 로맨스 드라마고, 어느 정도 주인공들의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일거라고 생각한 거다. 처음엔 만만하게 봤는데, 살인 장면이 그렇게 자세히 묘사될 줄 몰랐고, 병원에 갇히고 자해하고 탈출하는 것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회가 이어지며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연기를 하는 게 벅차다는 부담이 아니라, 대본에 대한 놀라움이 계속해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정훈과 여하진에게 모두 상처를 줬던 악역이자, 세월이 지나도 이정훈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던 인물인 문성호였기에 주석태의 연기는 매회 소름을 유발했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도 '극혐(극히 혐오)'을 외칠 정도로 주석태의 연기는 현실감이 넘쳤다고. 주석태는 "마지막에 유골함을 꺼내는 장면을 연기할 때에는 그곳이 제발 세트장이길 바랄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 납골당에서 촬영이 이뤄졌고, 그 홀 안에서 애틋한 문구들 속에서 제가 그런 연기를 해야 하다 보니 잠들어계신 분들께 너무 죄송했고, 다른 방향으로는 배우로서 너무 외로웠다. 마음이 많아 아팠다"며 "문성호는 일부러 많이 나쁘고 못되고, 또 더럽고 지저분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유골함에 키스를 하던 장면도 사실은 애드리브인데, 굉장히 진하게 했다. 대본에는 원래 '본다' 정도였는데, 유골함을 보는데 이름이 뒤로 돌아가 있더라. 그래서 인사를 하면서 입맞춤을 한 번 했던 거다. 강아지들을 화장하고 보내면서 '고생했어'하고 뽀뽀도 해주고 보냈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그 장면에서도 나온 셈이다. 그 장면을 보던 스태프들도 경악을 했다. '잘했어'라고 하지만, 결국엔 '어우'라며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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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연기한 악인이지만, 끝까지 악역에 대한 이해를 못하겠었다고 말한 주석태는 "역할로는 이해를 하겠지만,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99%의 정상인들이 1%의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문성호는 외로워서 그렇게 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작가 지망생이지만 데뷔를 못했지 않나. 가족도 멀리 있을 거고, 도움도 받았을 거다. 나이가 차오르니, 자의든 타의든 도움을 못받게 됐을 거고, 진상손님도 만나면서 자존감도 떨어졌을 거다. 낮에는 아름다운 작품을 찍고 작가가 됐지만, 그 한 시간 뒤에는 바코드를 찍고 있으니 자괴감이 들었을 거다. 지금 우리 배우 지망생들도 그런 삶을 사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 친구들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10년이 넘는 무명생활을 버틴 주석태는 이 시기를 이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무명 때 '구세주'라는 영화에서 대사가 한 마디였는데도 수없이 버벅였다. 그때 앞에 계시던 백일섭 선생님, 김부선 선배님, 박준규 선배님이 '괜찮아 천천히 해. 신인 때는 그래'라고 하시는 거다. 저는 그 말을 아직도 못 잊고 있다. 이 한 마디로 제가 2~3년을 버틸 수 이었고, 그 말로 '신인 때는 원래 떠는구나'하면서 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 말 한 마디가 나를 버티게 하고 단역을 몇 개를 더 하게 했던 것"이라며 "정서연에 대한 문성호의 마음도 그랬을 거다. 만약에 어떤 남성분이 그렇게 말을 해줬다면, 의형제가 되고 그랬겠지만, 예쁜 정서연이 그러니 사랑으로 가버린 게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워낙 강렬한 악역이었기 때문일까, 주석태는 향후 몇 작품은 악역을 피하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그는 "향후 몇 년 간은 악역에 대한 갈증이 없을 것"이라며 "있는 거 없는 거에 어디서 대출까지 해와서 감정을 쏟아낸 기분이다. 제가 할 수 있는 깜냥은 딱 납골당 전까지였고, 그때부터는 사실 저도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어딘가에서 집중력을 대출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충전을 해야만 악역을 또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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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세주'(2006)로 연기생활을 시작해 10년의 무명을 견뎌낸 주석태는 이제 시작이다. 악역으로 정점도 찍었으니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주석태는 "밝고 재미있거나 소시민들의 아픔을 다루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는 염반장이나 문성호에 이르기까지 허구에 가까운 인물들을 연기하다 보니 허공에 헤엄을 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연기가 그렇지만 확신이 들지를 않더라. 순수 창작 연기다 보니까. 이게 맞는 것인지 비교 대상도 없었고, 확신이 없었는데, 현실적인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주연 욕심도 크게 없다. 좋은 배역을 만나기만 하면 만족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 울림이 있다. 주석태는 "시청률과 주연은 하늘이 내려주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러나 걱정은 있다. 과연 제가 덜컥 주연이 됐을 때 긴 호흡을 책임감 있게 끌고갈 수 있을까. 그것도 도전인데 어떻게든 하겠지만, 미지의 세계라 궁금한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주석태의 올해도 역시 바쁘다.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tvN '구미호뎐'의 출연을 앞두고 있고, 12월에는 야심차게 연극도 올릴 예정이다. '악역'으로 재발견된 주석태의 미래가 더 밝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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