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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초점]개봉 첫날 1위→엇갈린 여론…'나랏말싸미'는 왜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나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9-07-25 11:21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영화 '나랏말싸미'가 무려 40일 만에 외화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한국영화가 됐다. 하지만 '나랏말싸미'를 바라보는 대중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24일 개봉한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 ㈜영화사 두둥 제작)가 개봉 첫날 15만1262명을 동원, '라이온킹'(존 파브로 감독)과 '알라딘'(가이 리치 감독)을 꺾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간 마블과 디즈니 영화에 맥을 못 추던 한국영화가 다시 1위로 올라선 건 '기생충'(봉준호 감독)이 1위를 차지한 이후 무려 40일 만이다.

송강호, 박해일, 고 전미선 등 충무로 정상급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섬세한 연출을 바탕으로 외화를 누르고 1위에 올라서며 충무로의 자존심을 세워준 '나랏말싸미'. 하지만 여론은 곱지만은 않다.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고 쓰고 있는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만든 훈민정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게 지금까지 배워온 교과서 속의 역사이자 학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나랏말싸미'에서 세종대왕과 함께 한글을 만든 이는 집현전 학자들이 아닌, 스님인 신미대사다. 이러한 설정이 역사 왜곡 논란을 부추긴 것. 영화에서 세종대왕은 오로지 한자 밖에 모르는 신하들과 집현전 학자들 대신, 여러 언어에 능통한 신미대사에게 한글 창제를 함께 해줄 것을 권유했고 신미 대사는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등 소리 글자들의 원리를 바탕으로 훈민정음을 완성한 걸로 그려진다.

이 내용은 영화의 갱가가 100% 허구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신미대사 창제설은 한글 창제에 관한 수많은 '설'들 중 하나다. 학계에는 아직까지도 정설로 인정되지 않지만 나름의 이유와 증거를 언급한 도서와 자료는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도 수많은 '창제설' 가운데 하나를 차용했다고 정확히 밝힌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스크린에 가장 먼저 뜨는 것 역시 '이 영화는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가운데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 했다'는 문장이다. '나랏말싸미'는 본 영화가 한글 창제에 대한 신미대사의 이야기가 '진짜 역사'라고 강요도 하지 않는다. 또 신미대사의 한글창제설 역시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고 분명히 밝힌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신미대사의 한글창제설이라는 '설'과 영화적 아이디어의 결합으로 탄생된 영화라는 이야기다.
'나랏말싸미' 이전에도 이런 영화는 있었다. 2012년 개봉해 1232만 관객을 모으며 큰 사랑을 받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 역시 같은 맥락의 영화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의 15일간의 행적이 기록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사라진 광해해의 15일간의 행적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은 여러 가지 설을 제기한 바 있는데, 영화는 영화적 재미와 이야기를 극대화 할 수 있는 '15일간의 가짜 왕'이라는 주제를 택했고,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영화를 완성했다.

그렇다면 왜 '나랏말싸미'가 유독 이런 역사 왜곡 논란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일까. 대중의 공분을 가장 자아냈던 부분은 홍보 방식에 있다. '나랏말싸미'가 개봉 전 역사 강사 이다지가 신미대사의 한글창제설에 대해 설명하는 홍보 영상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유명 역사 강사가 나서는 홍보 영상은 최근 개봉하는 사극 영화들이 많이 택하는 홍보 방식 중 하나. 대중에게 익숙한 유명 역사 강사가 나선다면 이야기의 신뢰도가 급상승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다지의 '나랏말싸미' 영상은 대중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팩트와 정설을 기반으로 한 강의를 해오고 있는 유명한 강사의 설명이니 만큼, 영상을 접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나랏말싸미'가 다루는 신미대사의 한글창제설이 정설이라고 믿는 이들도 등장했고, 정설임을 주장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 것. 물론 이다지 역시 영상에서 "많은 한글창제에 관한 설 중 하나다"고 정확히 밝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영상 전체의 내용 보다는 일부, 혹은 캡쳐된 장면으로 영상을 접하게 되는 네티즌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대중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홍보 영상으로 인해 역사 왜곡의 불을 지핀 건 분명 '나랏말싸미' 측의 실수이자 잘못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랏말싸미'는 관객에게 영화의 이야기가 '진짜'이자 '정설'임을 강요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가 진짜 관객에게 전하고 있는 건, 자신의 건강을 버려가면서, 또한 일반 백성들이 글을 깨우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신하들의 거친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한글을 창제해 글을 못 읽는 백성들이 하나도 없게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다.

smlee032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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