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인터뷰 종합]"극장 포기=뼈아픈 일"…그럼에도 거장 박찬욱이 드라마를 택한 이유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9-03-25 13:15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 그렇기에 마음이 갈 수 밖에 없는 스토리였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55)감독. 그는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다룬 '리틀 드러머 걸'의 메가폰을 들었을까.

1979년,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연루되어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와 그녀를 둘러싼 비밀 요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첩보 스릴러 '리틀 드러머 걸'. 메가폰을 잡은 박찬욱 감독이 '감독판' 공개에 앞서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가진 라운드 인터뷰를 갖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해 영국 BBC와 미국 AMC를 통해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은 영국 첩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의 탄탄한 원작 소설과 플로렌스 퓨,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마이클 섀넌 등 탄탄한 배우진으로 제작 단계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 무엇보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스토커'(2013), '아가씨'(2016)를 연출한 충무로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 박찬욱의 첫 드라마 연출작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스파이가 된 배우와 그녀를 둘러싼 비밀 요원간의 치열한 심리전과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그려내며 TV 방영 당시 "박찬욱의 놀라운 TV데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찬란하다"라는 극찬까지 이끌어 냈다. 그런 '리틀 드러머 걸'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와 채널A를 통해 공개돼 드디어 한국 관객을 만난다. 오늘 29일 VOD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에 방송 심의 기준과 상영시간 제한에 따라 제외된 다수의 장면을 포함한 감독판이 공개되고 같은 날 오후 채널A를 통해 방송판이 전파를 탄다.
이날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전날 극장에서 진행된 특별 시사회에서 감독판 6편을 연속 상영을 관람한 소감을 묻자 "감독뿐만 아니라 방송판도 극장에서는 딱 두편만 봤었다. 6편을 다 보고 나나니까 '리틀 드러머 걸'이 이제야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고 답했다. 이어 "긴 시간동안 작업을 해왔는데 드라마는 확실히 영화와 다르더라. 영화는 언론시사회를 하고 나면 이 작품과 바이바이 하는 실감이 드는데, '리틀 드러머 걸'은 드라마라 그런지 미진한 기분이 들었었다. 어제 극장 상영을 보고 나니까 그제야 작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감독판과 방송판의 핵심적 차이를 묻자 "찰리의 시계 달린 라디오가 있는데 배터리와 관련된 신이 나오다. 그 신이 굉장히 중요한 신이다. 그런데 그 장면에 대한 차이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감독판은 플래쉬백으로 편집하고 방송판에서는 현재 시제로 편집을 했다"고 답했다.

앞서 열린 시사회에서 원작소설의 '첩보스파이'라는 측면 보다는 '로맨스'에 더 끌렸다는 박찬욱 감독. 그는 그렇기에 로맨스를 더욱 강조해 연출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두꺼운 원작 도서를 6부작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이 줄이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뭘 빼고 뭘 보정하느냐에 대한 선택은 감독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가 반영된다. 저는 로맨스 관련한 면을 조금이라도 희석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서 로맨스 장면을 더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다. 두 남녀 사이의 장면이 원작 보다 더 유머와 따뜻한 감정을 넣었다. 찰리(플로렌스 퓨)와 어떤 남자 사이에 정사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장면이 영화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다. 찰리와 다른 장면의 그 정사 장면은 베커가 의도해서 환경이다. 찰 리가 그렇게 하길 바란 장면인 것이다. 하지만 연인으로서는 베커의 마음이 찢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그런 건 원작에는 아예 없는 장면이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은 '리틀 드러머 걸'을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분량'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130분 영화 분량에 도저히 다 넣을 수 없는 스토리였기 때문에 드라마 시리즈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꼭 하고 싶은 스토리가 있는데 엄청 긴 분량이라면 TV나 새로운 플랫폼에서 시리즈로 하게 될 것 같다"며 "하지만 그런 선택은 굉장히 큰 걸 희생해야 한다. 바로 극장 상영이다. 극장 상영을 포기하는 건 정말 뼈를 때리는 고통이다. 그래서 정말 좋은 것이 아니면 하고 싶지 않다. 극장 상영을 웬만하면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친절한 금자씨' '박쥐' '스토커' '아가씨' 등 여성 배우를 내세우는 작품을 주로 해온 박찬욱 감독. 그는 플로렌스 퓨를 '리틀 드러머 걸'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용기와 모험심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고 답했다. 이어 "플로렌스 퓨를 캐스팅하고 처음 만났을 때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며 역시 저 친구라면 모험심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작품 속에서도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언제나 작품에서 돋보이는 미술을 보여주는 박찬욱 감독.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영화 미술에 대해 "배우가 놓인 환경 전체를 디자인하는 일 아닌가. 미술은 있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과 그것을 꾸미고 세트를 짓는 것 두가지가 있다. 그리고 메이크업과 의상에게도 컨셉트를 제공하고 결국에는 영화 속 화면의 전체를 디자인한다. 그걸 아주 인공적으로 꾸며진 세계라고 상상하기 쉽겠지만 굉장히 자연주의 영화 조차도 또 그런 과정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류성희 감독과 호흡을 맞추다 이번 작품에서는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 토마슨 알프레드슨 감독) 마리아 듀코빅 미술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박찬욱 감독. 직접 '팅거 테일저 솔저 스파이' 미술 감독과 일을 해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는 박 감독은 "미리아 미술감독의 미술은 '디 아워스' 때도 참 좋았고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더 좋았다. 특히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감동적이었던 건 영국 첩보부의 회의실의 세팅과 그 안 사무실 세팅들이 참 독창적이었다"며 "이번에 함께 일해보니까 정말 호흡을 잘맞고 손발이 척척 맞았다. 영국의 류성희 감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은 "충무로의 대표 감독" "무조건 믿고 보는 감독"이라는 대중의 큰 기대가 부담이 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그런 기대감 때문에 감독판을 어떻게 해서든지 만들겠다고 나섰던 것이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방송판으로만 내놨으면 아쉬움을 컸을 거다. 사실 방송판이 많이 아쉽긴 했다. 감독판과 방송판은 차이가 크다. 빙송판은 예술적인 면도 있지만 후반 편집 시간이 너무 적었다. 제작진과 의견차이가 없었더라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감독판으로 편집을 꼭 다시 하고 싶었다. 감독판을 하면서 엄청난 개선이 이뤄졌다. 계속 외국에서 촬영하면서 빨리 냉면 먹으로 한국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는데 계속 매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꾹 참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대중의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아가씨'에서도 본색을 속이고 연기하는 캐릭터 숙희를 그려낸 박찬욱 감독. 그는 이번에서 비슷한 캐릭터 찰리를 내세운 것에 대해 "제가 그런걸 좋아한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리틀 드러머 걸' 갱을 쓸 때도 똑같았다. 자기 본색과 진심을 감추고 행동하고 뭐가 진짜인지 자신 조차 모르는 상황에 놓이는 것, 그런 걸 제가 좋아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가씨'에서는 가상의 판을 짜는 코우즈키, '리틀 드러머 걸'에서는 마이클 섀넌. 가상의 세상을 창조해 거짓 역할을 원하는 일종의 '영화 감독'처럼 보이는 캐릭터들을 악랄하게 그리는 이유를 묻자 "실제로 영화 감독들이 그러하다는 생각에서 나온건 아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감독들이 하는 일이 어떤 면에서는 '신'(神)적인 존재로 보이기도 하지 않나. 그런 비유라 생각한다. 실제로 감독이 신적인 존재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비유로 비춰질 때에 그들의 잔인한 면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박찬욱 감독은 남북의 이야기를 그렸던 자신의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 연출이 '리틀 드러머 걸' 연출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남북의 분쟁과 '리틀 드러머 걸'의 소재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많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런 일에 대한 동병상련이 있으니까 영국 감독이나 미국 감독에게는 갖지 못했을 공감하는 마음이 있을거라 생각했다"는 박 감독은 "끝없는 분쟁. 폭력이 악순환. 뭔가 하나 공격하면 크게 앙갚음을 해야되고 더 크게 갚아야 하는 악순환. 알게 모르게 저의 출신이 이 영화의 연출에 작용한 면이 있을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박찬욱은 차기작에 대해 귀띔했다. 앞서 외신 보도를 박찬욱 감독이 아마존에서 제작하는 서부극 '브리건드 오브 래틀클릭'의 연출을 맡는다고 알려진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투자가 확정된 작품이 아니다. 투자가 확정된다며 연출을 맡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국내 작품 계획을 묻자 "한국 작품도 개발중이다. 한국 작품은 형사가 주인공되는 미스터리 수사물이 될 거다. 남녀주인공을 내세울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은 3월 29일 오후 왓챠플레이에서 6편이 전편 공개된다. 방송판은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6주간 채널A에서 방송된다.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 제공=(주)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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