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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공감' 故신성일 발자취 "맨발의청춘, 전설이 되다"
소담스러운 함박눈이 내리는 지난 2월, 우리가 신성일을 만난 곳은 전남 화순의 한 요양병원이었다.
스타 중의 스타여서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 것 같았던 사람, 늙지도, 아프지도 않고 영원할 것 같았던 대스타, 그런데 그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빛나는 별은 언제든 그 빛을 다시 발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곳에서도 그는 다른 환우들의 관심을 받았고, 그가 가는 곳엔 사람들이 모였다.
신성일은 이따금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스스럼없이 환자들 틈에서 식사를 하고 웃고 농담하며 그들의 쾌유를 기원해주었다. 그곳에서 그는 스타가 아닌,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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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의 역사이며 살아있는 전설
훤칠한 외모와 강렬한 눈빛의 신성일은 1960년, <로맨스빠빠>로 스크린에 데뷔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대체 불가한 독보적인 배우로 기나긴 전성기를 누린 그는 무려 500편이 넘는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톱스타의 인생이 늘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치인으로서 새 삶을 시작한 신성일 앞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의 낙선으로 거액의 빚을 졌고,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비리 혐의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엄앵란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지만 부부 관계도 평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외도와 평탄하지 않았던 결혼생활을 많은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밝혔고, 이후 '졸혼'한 부부는 각자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아내인 엄앵란이 유방암 판정을 받자, 신성일은 한걸음에 달려와 아내를 병간호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도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이번엔 엄앵란이 그의 투병을 응원하고 지원하면서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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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서 차기작 출연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 작품이라고 말하던 영화 '소확행'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11월 4일, 그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세월은 어김없이 흐르고, 영원한 것은 없다. 거침없이 달려온 맨발의 청춘.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은막의 스타. 진정한 별이 되어,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