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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허남훈과 작가 김모아, 이 부부는 왜 밴(Van)에서 살았을까

전혜진 기자

기사입력 2018-04-02 11:00



[스포츠조선 전혜진 기자] '찍는 남자'와 '쓰는 여자'가 그 질문에 대답한다.

최근 미국 유럽 등 인스타그램 유저들 사이에서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주제어가 있다. 바로 해시태그 밴라이프(#밴라이프). 집 없이 캠핑카 한 대에 침실과 살림을 꾸려놓고, 여행과 일상을 같이 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스타그램에서 밴라이프를 검색하면 집을 버리고 캠핑카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올린 250만 개가 넘는 사진과 후기를 볼 수 있다.


여기, 한국에서 밴라이프에 도전한 부부가 있다. 단순히 '캠핑카 타고 여행이나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캠핑카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매일 여행하듯 살아가고 살듯이 여행하는 사람들 말이다.

'여행하는 집, 밴라이프'의 남자 허남훈은 브라운아이드걸스, 어반자카파, 남태현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감독이다. 여자 김모아는 전 뮤지컬배우이자 현 작가다. 허남훈 감독과 공동작업을 하며 뮤직비디오 및 CF 스토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가며, 이따금 함께 여행하고 여행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던 šœ은 부부는 생각한다. '어른들의 말대로 우리도 얼른 아이를 낳고 대출받아 집을 넓혀가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살면 행복해지는 걸까?' '여행은 즐거운데 일상은 너무 고단하다. 여행지로 출발할 땐 좋은데, 며칠만 지나도 집밥이 그립다. 여행 가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막상 일에 치여 여행 갈 시간이 없다. 여행과 일과 생활의 이 공고한 경계를 와르르 무너뜨릴 순 없을까?'


이들은 집안 가득 들어차 있던 가구와 책과 옷과 각종 짐을 버리거나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살던 전셋집을 뺀 뒤 캠핑카 한 대를 구한다. 캠핑카는 좁기에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이곳에서 정말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슬쩍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좁은 밴 안에는 욕실, 거실, 침실, 부엌 등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공간이 모두 갖춰져 있고, 이곳에서 이들은 꿈꿔왔던 새로운 삶을, 여행을 시작한다.


부부는 2017년 3월 17일 밴 라이프를 시작한 이래, 7만 5천여 장의 사진을 찍으며 밴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기록했다. 말 그대로 길 위의 역사다.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살아가야 하기에 무엇을 사고 무엇을 내다버릴지 꾸준히 논의해가며 심플한 삶을 유지하고, 눈부신 가을의 억새밭이 창밖에 펼쳐져 마음이 설렐지라도 이내 노트북을 켜서 그곳을 '억새밭 사무실'로 만들어버리는 이 부부의 삶은, '미니멀라이프'와 '디지털노마드'를 동시에 시도하는 대안적인 삶의 관점으로 봐도 흥미롭다.

'캠핑카에서 살기, 밴라이프'는 지금까지 여유 있는 중장년층들의 로망으로만 여겨져왔다. 그러나 평범한 직장인이 수도권에 내 집 한 칸을 얻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고 빚을 끌어안은 채 야근하고 죽도록 일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밴라이프'는 새로운 세대의 삶의 방식이자 대안적인 주거 형태가 될 수도 있음을 이 부부는 실험하고 증명해낸다.



김모아 허남훈 부부는 어딘가에 서명할 일이 있으면 늘 이런 문장을 덧붙여 쓴다고 한다. '오늘도 내일도 다시없을 마지막.' 만약 오늘, 지금이 당신의 마지막 순간이라면, 당신은 창밖에 어떤 풍경을 걸어두고 싶은가?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공간에서 먹고, 자고, 살고 싶은가? '밴라이프'는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눈 앞에 두고 살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을 읽고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는걸 느꼈다면 '여행하는 집, 밴 라이프'를 통해 그들의 삶을 더욱 깊게 만나보는 건 어떨까.



gina1004@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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