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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재란이 미국행을 선택했던 이유는 이혼에 대한 상처였다.
이어 "두 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일하느라 딸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면서 일에 대한 열정 때문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첫 남편과 13년 만에 이혼한 박재란은 이혼의 아픔을 잊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박재란은 "요즘에는 이혼을 참 많이 하지 않느냐. 그러나 제가 인생을 살아온 결과 한 번 결혼했으면 좀 참을 수 있는 선까지는 참고 유지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재란은 "두 딸을 두고 먼저 미국으로 떠났었다. 이후 내 여건과 아이들 아빠 때문에 15년 이상 만나지 못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 신문으로 딸인 박성신이 가수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미국 생활 당시 떳떳하게 딸들을 만나러 오고 싶었지만 상황이 안 좋았다"고 밝혔다.
박재란의 둘째 딸 고(故) 박성신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한 후 가수로 데뷔했다. '한번만 더' 등의 히트곡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고 박성신은 2014년 향년 45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박재란은 "미국에서의 제 삶은 하루하루가 눈물이었다. 미국에서 가수 활동을 했다. 1970년대 중반 한인 교포들이 너무 적어 연예인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적었다. 결국 밤업소에서 일할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박재란은 그곳에서 또 사기를 당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동업자로 인해 약 20억 빚을 지게 됐다는 박재란은 우울증에 빠졌다. 이에 대해 박재란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다. 쫄딱 망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가 미국에서 성공하고 돌아가야지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