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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막장 드라마도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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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교통사고를 비롯한 처참한 비극, 악역에 의해 헤어진 친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지척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채 앙숙이 된다는 설정, 자신의 악행을 덮기 위해 사악한 거짓말을 거듭하는 악녀, 그리고 착하기만 할 뿐 무능한 선역을 돕는 절대적인 능력자의 등장과 같은 극단적인 캐릭터와 상황 설정으로 '욕 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줬다.
예를 들면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과 장보리(오연서), '내 딸, 금사월'의 오혜상(박세영)과 금사월(백진희)의 폭풍 같은 선악 대립 구도를 그리며 시청자를 유입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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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있다면 바보같이 당하기만 했던 선역에서 탈피, 김은향의 지략 플레이를 중심으로 악역에게 사이다 복수를 선사하며 통쾌함을 심어줬다는 것. 그래서 '언니가 살아있다'는 'RPG 막장'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 인간으로서의 구제가 가능한 것인지를 의심케 했던 김 작가의 전작 속 악녀들과 달리 너무나 얄밉지만 짠하고 귀엽기까지 한 악녀 구세경(손여은)을 탄생시키며 시청자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독특한 전개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언니가 살아있다'는 시청률 20%대를 돌파하며 SBS 주말극의 자존심을 세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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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경 작가도 '막장의 진화'를 보여준다. 막장과 가족극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유지한 탓에 대놓고 막장 작가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내 딸 서영이' '황금빛 내 인생' 등 소 작가의 작품에는 자식 바꿔치기를 비롯한 막장 요소들이 꽤 적나라하게 나온다.
이번 '황금빛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서지안(신혜선)과 서지수(서은수)의 신분이 뒤바뀌고 그로 인해 서지안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서지수는 혼란한 방황기를 보내며 가족들과 마찰을 빚는 과정이 '황금빛 내 인생'의 핵심 줄거리다. 여기까지만 보면 출생의 비밀, 자식 바꿔치기, 신데렐라 스토리 등 온갖 클리셰가 막장의 틀 안에서 뒤죽박죽 섞여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를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풀어내며 막장의 기운을 감추고 시청자를 설득시키는 것이 소현경 작가의 작법이다.
그리고 지난 14일 방송에서는 또 한차례 반전을 줬다. 바로 서태수(천호진)의 상상암 설정이다. 배은망덕한 자식들 때문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했던 서태수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제서야 가족들은 서태수를 걱정하며 치료를 권했지만, 서태수는 이를 모두 거부하고 혼자 죽겠다면 집을 떠났다. 가족들은 망연자실했지만, 서태수의 병명이 암이 아닌 상상암이라는 걸 알고 또 한번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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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존 드라마의 틀을 깨는 자극적인 설정, 그리고 서태수의 투병기와 갈등 봉합 과정을 소현경 작가가 어떤 톤으로 그려나갈지도 기대가 쏠리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황금빛 내 인생'은 혹평과 별개로 43.2%(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종전의 자체 최고 기록(42.8%)을 0.4% 포인트 뛰어넘은 것이다.
'황금빛 내 인생'의 파급력은 단순히 시청률에만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의 상승세에 힘입어 천호진은 2017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박시후는 재기에 성공했으며 신혜선은 일약 신데렐라가 됐다.
결국 김순옥 작가와 소현경 작가는 진화한 막장은 언제나 시청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걸 재입증한 셈이다.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