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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이병헌과 김윤석 두 사람의 미(美)친 연기 대결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남한산성'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신파, 판타지, 화려한 액션 등 최근 한국 사극 영화가 보여줬던 모든 관습을 집어던진 '남한산성'은 오직 이야기와 인물에 집중한 묵직한 정공법으로 영화를 끝까지 밀고 간다. 150억 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와 흥행 배우들이 모두 모인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그 어떤 자극적인 MSG를 추가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간 황동혁 감독의 뚝심이 돋보인다. 황 감독의 뚝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시사회 이후 쏟아지고 있는 호평으로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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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이 배우들이 아니었으면 안됐어요. 이 정도 흥행력과 스타성과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어느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오락 영화'와는 거리가 먼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을 지원해줬겠어요. 그리고 이 배우들이 아니었으면 영화 속 인물들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 거예요. 이 배우들이 거절했다면 아마 전 밤낮으로 무릎 꿇고 매달리기라도 했을 거예요.(웃음)"
"아크가 큰 김상헌에 비해 이병헌 선배님이 연기한 최명길은 톤 자체의 변화가 크지 않은 캐릭터에요. 같은 톤으로 묵묵하게 상대를 설득해 나가는 캐릭터였죠. 움직임도 크지 않았어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왕에게 이야기하는 게 전부니까요. 자칫하면 밋밋한 연기가 나올 수 있을 만한 인물이죠. 그런 인물을 밋밋하지 않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이병헌 선배님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서 엎드린 상태로 왕의 허리께만 바라보고 말하던 최명길이 왕의 눈을 바라보는 장면은 후반 하이라이트인 딱 한 장면뿐이에요. 그것도 병헌 선배님의 아이디어였죠. 바짝 엎드린 모습으로 러닝타임 내내 같은 말하기 방식으로 왕을 설득하는 최명길이지만 이병헌 선배님은 목소리 톤의 미묘한 변화로 캐릭터에 생명과 설득력을 불어넣었어요.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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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08, 나홍진 감독) 속 김윤석 선배님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어요. 극중 김상헌은 늙은 사공을 베어버릴 정도로 불 같고 단단한 사람이지만 사공의 아이 나루가 나타났을 때 죄책감을 보여주고 흔들리고 인간적인 틈을 보여주는 사람이죠. 그런 모습이 '추격자' 속 윤석 선배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나가고 또 연쇄살인마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지만 피해자의 어린 딸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기도 했잖아요. 그런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하는 분이 김상헌을 연기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영화 속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꼽히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왕 인조를 가운데 두고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으며 화친과 척화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펼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들도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그 장면은 정말 '배틀'처럼 찍었어요. 카메라 두 대를 동원해 두 사람을 따로 잡고 또 동시에 찍었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끊지 않고 가는 걸 원칙으로 했어요. 중간에 실수가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가는 거죠. 열기가 대단했어요. 열기와 몰입이 고조되니까 중간에 대사 실수가 나오면 두 배우분들 모두 실수한 본인에게 화를 내더라고요. 그 4분에 달하는 신을 쉴 새 없이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펀치를 주고받거나 랩배틀을 하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는 저조차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죠. 연출자로서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 만큼 중요한 인물은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 배우 박해일은 인조를 통해 처음 왕 역할에 도전했다. 황 감독은 두 차례나 출연을 고사했던 박해일을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남한산성'에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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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송정헌 기자 songs@, 영화 '남한산성'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