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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아이돌학교'의 데뷔 기준은 뭘까. 실력도, 외모도, 인기도 아니다. '육성회원(국민 프로듀서)'의 존재감은 갈수록 미미해진다. 오로지 데뷔조 양상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제작진의 억지만 가득하다.
순위상승권이 주어지는 과정은 제작진의 노골적인 개입이 돋보였다. 제작진은 '눈높이수업'을 진행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실력별 그룹으로 나눈 뒤 비슷한 실력의 생들끼리 대결을 붙였다. 각 대결에서 춤이나 노래, 퍼포먼스 실력이 뛰어난 학생의 절반은 손해를, 실력이 낮은 학생들의 절반은 이득을 보는 괴상한 방식이다.
실력 평가는 개인별로 내려지는데, 순위상승권은 승리한 팀의 팀원 모두에게 주어졌다. 그 결과 이 권리를 갖게 된 참가자는 32명 중 절반에 가까운 14명에 달했고, 탈락자 4명은 모두 패한 팀에서 나왔다. 반면 팀은 졌지만 높은 개인점수를 기록한 학생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제작진이 원했던 대로 데뷔조의 흐름은 엉망이 됐다. 송하영은 최종순위 1위임에도 불구하고 순위상승권을 획득하지 못해 데뷔조 끄트머리인 9위까지 내려앉았고, 인기 멤버인 이해인과 이채영은 프로그램 시작 이래 처음으로 데뷔조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이날의 MVP로 뽑힌 박소명은 순위상승권 1개를 추가로 획득, 무려 6순위를 뛰어오르며 첫 데뷔조 입성에 성공했다.
그 결과 '아이돌학교' 육성회원의 존재감은 땅에 떨어졌다. 꾸준함과 애정이 필요한 사전 온라인투표와 생방송 문자투표가 '3단계 순위상승권'이라는 압도적인 베네핏 앞에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아이돌학교와 프듀가 닮은꼴 프로그램이라고 말하지만, 두 프로그램은 매우 다르다. 출연자 레벨-그룹 배틀-포지션-콘셉트로 이어졌던 프듀의 평가 시스템은 아이돌학교의 그것보다 훨씬 체계적이다. 개별 출연자들의 적성과 특기, 개성, 실력을 보여주는 면에서도 훨씬 다양했었다.
과거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권위를 지닌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을 선발하는 과정만 방송에 담겼다. 하지만 '슈퍼스타K' 이후 이른바 '국민투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가 됐다. 시청자들의 투표를 상당부분 순위에 반영해 높은 관심을 창출하고, 팬들이 원하는 스타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제작진의 입김이 강하게 드러나며 이 같은 흐름에 역행했던 '슈퍼스타K4'는 '슈스케' 시리즈의 끝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반면 자사 걸그룹 멤버를 대표가 직접 뽑았던 '식스틴'에서 박진영 대표는 인기투표 결과를 거의 그대로 반영하다시피 했고, 이는 역대급 걸그룹 트와이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프듀 시즌1-2는 심사위원에겐 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적인 평가만을 맡기고, 데뷔 멤버 선발은 오로지 시청자의 손에 맡긴 혁신적인 방식을 채택한 결과 대성공을 거뒀다. 악마의 편집이나 출연자 분량 차이 등 제작진의 손길에 따른 흐름은 존재했지만, 적어도 방송 결과 나타난 시청자의 뜻을 거스르진 않았다.
'아이돌학교'에서는 매회 실시간 투표 및 순위공개, 그리고 그 현장 생중계가 진행된다. 최하위 순위자에겐 중간 어필 기회도 노골적으로 주어진다. 출연자 입장에선 가히 오디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유권자'를 이렇게 대하는 프로그램에 애정을 가질 육성회원이 얼마나 될까.그리고 그 결과로 탄생할 걸그룹은, 얼마나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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