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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역적' 박은석 "美영주권자가 왜 군대갔냐고요?"

백지은 기자

기사입력 2017-05-22 16:11



[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배우 박은석은 참 독특한 캐릭터다.

써클렌즈를 낀 듯 유난히 크고 짙은 눈동자도 인상적이고 선한 외모와 대비되는 저음 보이스도 독특하다. 연기 이력도 꽤 특이한 편인데 최근 젊은 배우들은 기피한다는 연극판에서부터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지난해 방송된 KBS2 주말극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과 최근 종영한 MBC 월화극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에서 인상 깊은 연기로 얼굴을 각인시켰다. 또 하나 재밌는 점은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민효상이나 '역적'의 수학이나 모두 얄미운 악역 캐릭터였다는 점. 자격지심과 열등감, 그리고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밉상 캐릭터를 연달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듯 하다.

"따지고 보면 80부작을 연달아 했다. 한편으로는 후련하고 돌이켜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작품 한 두개 끝내면 반년이 가있고 이러면서 평생 연기를 하게 되는건가 싶다. 보람있다. 잘 마무리 돼서 다행이다. 부담은 없다. 사실 악역 캐스팅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순한 배역으로 오디션을 봐도 악역으로 캐스팅이 되더라. 악역이라고 하면 악역이고 그 인물이 드라마에서 해야하는 역할은 분명하다. 모두가 해피할 수는 없지 않나. 주인공에게 문제가 생기도록 유발하는 장치다. 이야기 속에 분명히 필요한 존재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역할에 충성을 다하는 거다. 단순히 호평받거나 응원받는다는 게 아니라 내가 작품 안에서 해야할 역할을 다하는 것 뿐이다."


박은석이 연기한 수학은 이기적인 고집으로 똘똘 뭉친 기회주의자였다. 수학은 박씨 부인(서이숙)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홍길동의 부친인 아모개(김상중)에게 죽었다는 걸 듣고 폭주한다. 그리고 홍길동(윤균상) 패거리를 잡아넣으려 토벌군의 우두머리가 됐지만 하지만 오히려 대패해 어머니와 함께 노비로 전락한다. 5년 뒤 노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어머니가 객사한데 분노해 주인을 죽이려 하지만 감옥에 갇혔고 우연히 만난 홍길동을 노려본다. 하지만 홍길동은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고 수학은 허탈하게 엔딩을 맞았다.

"상징적인 캐릭터다. 어머니와 내가 생의 순환, 인과응보. 역사 속에 반복되는 사건들이나 일화를 상징할 수 있는 그런 패밀리였던 것 같다. 내가 끝내 죽지 않은 게 더 괜찮은 결말이었던 것 같다. 전장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계속 예감이 죽을 것 같은데 계속 있더라. 그러다 결국에 노비가 됐을 때 매듭이 지어졌다. 나도 깜짝 놀랐다. 사실 어머니한테 너무 많은 걸 배웠다. 현장에서 처음 뵌 거였는데 너무 다정하게 해주셨다. 유쾌하시고 잘 챙겨주셨다. 나도 연기적으로 옆에서 계속 물어보고 도움 많이 주셨다. (김)지석이 형도 너무 좋다. 사람 냄새 나고 좋았다. 배우들 사이에는 너무 사이가 좋았다. 홍길동 패거리도 친해지고 그랬다. 고생을 많이 하니까 배우끼리 서로 의지가 됐다."


박은석의 연기에 모두가 호평을 내렸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폭주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민효상과는 또다른 매력과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본인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다 아쉬운 것 같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어야 연기가 더 도전하고 싶고 깊어지고 싶은 것 같다. 마지막에 어머니 돌아가실 때 장면이 가장 많이 기억날 것 같다. 찍을 때도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거의 끝을 향해 캐릭터가 묘사되고 어머니와 관계가 끝나는 중요한 오열신이었다. 감정신은 들어가기 전부터 부담이 되는데 오전 6시부터 일어나서 해야하니까 부담됐다. 그런데 감독님이 본인의 아버지 얘기를 갑자기 하셨다. 그러다 본인이 울컥하셨다. 그 마음이 그대로 나한테 왔다. 자식이 부모에 대한 마음이 이렇구나 하는 걸 느끼며 대사를 생각하니까 이번엔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더라. 어머니도 우리 때문에 다 포기하고 미국가서 노동하면서 키웠는데. 그게 연기로 들어가니까 훅 왔다. 어머니라는 대사 한 마디가 안나오더라. 복받쳤다. 감독님이 그걸 좋아하셨다."


박은석은 7세 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다 20대 초반 한국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 돌아왔다. 특이점은 미국 영주권자인 그가 군대를 다녀왔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병역 기피를 하려는 사람도 많은데 굳이 안가도 될 군대를 자진해서 간 이유는 뭘까.


"나는 혜택 받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당당한 걸 좋아한다. 떳떳하게 할 건 해야 나중에 당당할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도 소수자로 살았지만 한국에서도 소수자로 살고 있다. 내가 뭘 하면 아메리칸 마인드이고 미국에서 와서 군대도 안 가고 한국 정서도 모른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듣기 싫어서 군대도 가고 한국에서 대학도 졸업했다. 내가 당당하면 어딜 가든 굳건히 나로 서있을 수 있다. 또 당시 24세였는데 한국말이 서툴었다. 그런데 2년 동안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면 한국말을 배우는데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말리셨다. 어머니는 많이 우셨다. 하지만 아들을 믿어달라고 했다."


개념 가득한 행보는 군 제대 후에도 계속됐다. 최근 젊은 배우들은 연극판이 아닌, 방송이나 영화를 선호한다. 연극 무대에 서면 기본기를 닦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을지 몰라도 방송이나 영화에 비해 확실히 주목받는 속도도 느리고 계기도 없다. 빨리 주목받는 스타가 되고 싶은 이들은 그래서 연극 무대를 기피한다. 하지만 박은석은 연극 무대부터 차근차근 기본기를 다졌다. 2012년 '옥탑방 고양이'를 시작으로 '쩨쩨한 로맨스' '햄릿' '수탉들의 싸움' '레드' '클로저' 등 11편의 연극 무대를 채웠다. 탁월한 비주얼과 연기감을 갖춘 그에게 팬이 생겨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막강한 티켓 파워를 갖춘 배우로 성장한 박은석에게는 '대학로 아이돌'이라는 애칭까지 생겨났다.

"그런 타이틀은 부담스럽다.그냥 나를 신뢰하고 이 작품을 보러와주는 분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대선배님들은 전부 한때 대학로에서 고생하셨다. 거기에서 기본을 다졌다. 작품 하나씩 하면서 거기서 쌓이는 노련미, 견딜 수 있는 힘. 그 배역에 점점 다가갈 수 있는 노하우들.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어떻게 맞춰나갈 것인지. 이런 것들이 다 쌓여서 하나의 배우를 만드는 거다. 그런 선배들이 너무 잘 나가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그 길을 그대로 걷고 싶고, 또 다시 무대로 돌아와서 연극도 하고 싶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호기심이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 역할을 박은석이 어떻게 할까 궁금해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silk78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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