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 국악 소녀'라는 틀은 어린 송소희에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송소희는 자신의 고민을 밖에 쉽게 내놓을 수 없었다. 바로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 때문이었다. 그는 "난 어렸을 때 회사가 없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님이 모든 것을 관리해주셨다. 스케줄 조율부터 현장 관리까지 악역도 맡으면서 날 곱게 키워주시려고 수많은 가지들을 제거해주셨다. 또 혹여나 피해갈까 봐 개인적인 인연까지 정리하셨다"며 "국악이라는 정해진 꿈이 내게 흥미를 주는가, 적성에 맞는가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난 그저 부모님이 정한 길을 말 잘 듣고, 착하게 걸어가는 게 내 정해진 운명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고 밝혔다.
송소희는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틀에 갇혀 착실하게 지냈지만, 온전한 행복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송소희는 병적으로 소심한 성격을 갖게 됐고, 점점 더 틀에 갇혀 피곤하고 불행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참고 지냈던 것들이 결국 터졌다. 송소희는 17세 때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고, 나 홀로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게 됐다. 힘들어 보이는 송소희에게 할아버지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만 하지 말고, 너무 힘들겠지만 인정해라. 흐르는 대로 그 흐름을 타고 가라"라고 조언했다. 뜻하지 않게 제3자한테 큰 위로를 받은 송소희는 자신의 틀을 거역하지 않고, 틀을 확장할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하기로 했다.
|
스스로 자신을 틀에 가두고 제약했던 것에서 자유로워진 송소희는 "음악 안에서 국악을 바라봤을 때 우리 국악이 좀 더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국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또 "인간 관계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소심하고 주변을 불편하게 했다. 차가운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싱글벙글 웃고 다닌다. 친구들이 멍청이 같다고 송소희와 멍청이를 합쳐서 '송충이'라고 부르는데 그 별명도 마음에 든다"며 여느 20대 같은 발랄한 면을 드러냈다.
송소희는 "내 인생 그래프가 여러분의 인생에 비해 정말 굴곡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틀이 있는 거 같다. 그 틀을 우리가 벗어나려고 괴로워하기보다는 인정하고 확장을 하다 보면 분명히 삶의 질이 눈에 띄게 향상됨을 느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진심을 전했다.
supremez@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