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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리뷰]9연승 복면가왕 '세상에, 음악대장의 심수봉이라니!'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6-05-23 08:35 | 최종수정 2016-05-23 08:39



'세상에…, 음악대장의 심수봉이라니!'

9연승 가왕 타이틀 수성 무대,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솔직히 놀랐다. 직전 가왕 도전 무대에서 '램프의 요정'(김경호)이 '영원', '해야' 등 과감한 선곡으로 '폭풍' 가창력을 펼쳐보인 직후였다.

방송 전 일부 연예 게시판 등에서 트로트 선곡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지만, 설마 했다. 파워풀한 보이스, 심연의 묵직한 저음과 천공을 꿰뚫는 날선 고음의 진검승부, '록 VS 록'의 맞대결을 기대한 팬들에게 '심수봉'을 선택한 건 필시 반전이었다.

심수봉이 누구인가. 1978년 자작곡 '그때 그사람'으로 MBC대학가요제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던 그녀는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다. '미워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에 난 몰라', 그리고 '백만송이 장미'에 이르기까지 '심수봉'은 한국 가요사에서 이름 세글자만으로 가슴 뛰는 존재다. 1970년대부터 2016년까지 지난 반세기, 그녀처럼 나직하게 한국인의 한과 애환을 관통한 목소리는 없었다. 대체불가한 목소리요, 이야기었다. 조근조근 읊조리듯 나긋나긋 폐부를 파고드는 목소리는 그녀만의 전매특허다.

'백만송이 장미'는 1997년 심수봉이 러시아민요를 직접 번안한 곡이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가장 아끼는 곡"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모티브로 했다. "'최후의 심판대'에선 '내가 네게 준 사명을 다하고 왔느냐', '너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가사를 썼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9연승에 도전하는 '음악대장'이 '심수봉'의 이 어려운 곡에 도전했다. 백만송이 장미'는 잔잔하고 애잔하다. 목소리와 감정만으로 심금을 울리는 곡이다. 미친 고음도, 바닥을 때리는 저음도 없다. 수컷의 목소리, 남성적인 에너지가 넘쳤던 음악폭군, '음악대장'이 가장 감성적이고 가장 여성적인 노래를 선곡했다. 기막힌 '반전'이었다. 마법의 편곡을 활용해 한번쯤은 치고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애절한 가성'으로 백만송이의 사랑을 끊임없이 집요하게 속삭였다. 판정단 객석에서 눈을 가린 채 눈물을 쏟는 장면이 목격됐다.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록만 잘하는 가광이 아니다. 발라드도 트로트도 거침없이 소화해내는 장르 불문, '가왕'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예인 평가단' 조장혁은 "퉁명스럽던 남자가 갑자기 '사랑한데이' 하는 것같았다. '상남자'의 애정표현처럼 반전 무대였다"고 했다. 유영석은 "음악대장, 본인의 장기인 저음도 없고, 진성의 고음도 없었다. '가성도 잘하네'를 보여줬다"고 했다. "음악대장의 매력은 비수처럼 날카로운 비수속에 소년의 순수함이 있다는 점이다. 계속 이 자리에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같다." 최고의 찬사였다.

"가왕 타이틀을 내려놓고자한 선곡이 아니냐"는 '돌직구' 질문에 '가왕'은 단호하게 답했다. "아니오,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좀 나지막한 노래, 모나지 않고 세지 않는 노래를 하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니에요. 저도 그런 감성이 있거든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는 '힘 빼기'다. 특히 정상을 달릴 때, 힘을 빼기란 더 어렵다. 더 '쎈' 곡, 더 '화려한' 선곡의 유혹을 뿌리쳤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기 음악에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하나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변화'다. 대부분의 이들이 본능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가장 편한 방식을 고수한다. 잘 나갈 때 변화를 택하기란 더 어렵다. '음악대장'은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힘 빼기'와 '변화'를 동시에 선택했다. 뻔한 레퍼토리, 안정적인 성공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수동적인 '타이틀 방어'가 아닌 적극적인 '9연승 도전'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도전'을 즐기고 있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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