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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배우 박정민(29)과 인터뷰를 가진 1시간 남짓, 영화 '동주'의 흑백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송몽규를 직접 마주하고 있는 듯한 묘한 감흥이 여러 번 찾아왔다. 엄혹한 시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송몽규처럼, 박정민도 송몽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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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은 '윤동주 평전'에 실린 한 구절을 소개했다. '송몽규가 일본 경찰에 잡혀 있다 풀려나온 후 가슴이 자꾸 안으로 구부러든다며 가슴을 펴기 위해 베개를 베지 않고 잤다'는 진술이다. "심장을 후벼파는 것만 같은" 송몽규의 삶은 박정민의 가치관도 변화시켰다. "정의에 대한 나름의 책임감을 갖게 됐고, 지금 시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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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는 박정민은 어쩌면 윤동주와도 닮은 듯하다. 2011년 영화 '파수꾼'으로 데뷔한 후 '들개', '전설의 주먹', '신촌좀비만화' 등 여러 작품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 발견은 조금 늦었다. 윤동주가 송몽규를 보며 그러했듯, 박정민도 앞서 가는 동료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꼈고 한때 연기를 포기할까 고민도 했다. '동주'는 그런 박정민에게 깨달음을 안겼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이준익 감독님이 '동주'는 '과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라고 하셨어요. 그때 이상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책임감, 반성 다 아니고, 부끄러움이었어요. 이 영화를 기회로 생각했던 한 무명배우와 두 인물을 다룬 감독님의 의도가 충돌했던 거죠. 내가 할 일은 관객에게 송몽규란 분이 있었다고 얘기하는 것인데, 그걸 잊고 있었던 겁니다. 가슴에서 격랑이 일었어요. 그 이후로 태도가 바뀌었어요. 부끄러움을 상쇄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동주' 이후 연기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는 얘기에 그는 "기대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송몽규와 또 다른 잊혀진 이름들을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정민은 2년 넘게 한 월간지에 '언희(言喜)'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있다. 그의 재기 넘치는 글에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바람이 곳곳에 담겨 있다. 3월호엔 '동주'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글로 만난 박정민이란 배우는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연기에 대한 신념과 소신도 전해진다. 박정민은 "조금 늦더라도 자신을 배반하지 않고 존경하는 선배들의 발자국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한다. '동주'는 그의 더디지만 굳건한 걸음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끝내 과정만큼 결과도 아름다울 것이라 기대한다.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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