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발연기가 드라마를 망친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배우들의 명연기에도 대본이 드라마를 망친 경우도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KBS2 수목극 '장사의 신-객주 2015(이하 객주)'와 MBC 주말극 '내딸 금사월'이다. 두 드라마 모두 개연성 없는 막장 전개로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으며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객주'는 김주영 소설가의 연재소설 '객주'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당초 제작진은 "폐문한 천가객주 후계자 천봉삼(장혁)이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조선의 거상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라고 자신했다. "조선 후기 상인들의 삶을 그린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여니 정반대였다. 일단 상인들의 삶을 그린다기엔 장사 이야기의 비중이 너무나 약했다. 아무리 원작 소설 자체가 장사라는 소재는 거들 뿐 주인공 천봉삼의 의협 분투기를 주된 이야깃거리로 삼았다지만 드라마는 심했다. 천봉삼(장혁) 중심으로 판을 꾸렸다고는 했지만 그의 활약상은 사실 미비했다. 오히려 길소개(유오성), 매월(김민정), 신석주(이덕화) 연합에 밀려 이리저리 치이다 끝내는 매월의 손에 아내 조소사(한채아)마저 잃었다. 어디에도 보부상의 장이 됐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천봉삼이 거상이 되리란 기대를 품게하는 대목은 없었다. 오히려 매월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확대해석 됐다. 원작 소설에서의 매월은 천봉삼에게 추파를 던지던 주모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운명에 맞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무녀로 탈바꿈한 극적 설정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캐릭터가 이상해졌다. 운명의 남자라 믿는 천봉삼에 대한 집착이 과도해진 나머지 스토커로 변모했다.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미며 사람들을 쥐락펴락 하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모습은 광기에 가까웠다. 스토리가 산으로 가다 보니 시청자의 힐난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 '막장 사극'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배우들의 열연은 주목할 만했다. 일단 주인공 장혁의 하드캐리가 빛났다. '고생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죽음의 위기 속에 구르고 뛰며 고군분투했다. 얼핏 보면 분노와 카리스마로 점철된 천봉삼의 인생은 '추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장혁은 해학을 입혀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김민정은 1인 2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변화폭이 큰 캐릭터를 소화했다. 순수했던 개똥이 시절부터 표독스러운 매월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을 물 흐르듯 섬세하게 그려냈다. 유오성은 희대의 악역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이덕화는 인생사 공수래공수거임을 느끼게 하는 묵직한 존재감을 남겼다. 당초 '사극 어벤져스'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캐스팅을 자랑했던 '객주'는 배우들이 톡톡히 제 역할을 해줬음에도 막장 스토리로 시청자의 등을 돌리게 한 셈이다.
MBC '내 딸, 금사월' <사진=MBC>
'내딸 금사월'은 '막장계의 대모' 김순옥 작가의 작품답게 황당한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장르 자체가 '막장'인 만큼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당위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지나쳤다. 주인공 금사월(백진희)을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로 설정하면서 희대의 비호감 주인공을 창조해낸 것. 강만후(손창민) 일가가 자신의 외조모부와 엄마 신득예(전인화)에게 한 악행을 알게 되고 나서도 강만후 일가를 감싸고 강찬빈(윤현민)과의 결혼을 강행, 신득예의 복수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행위는 황당을 넘어 분노 게이지를 가득 차오르게 했다.
1인 2역 코난에 빙의한 '사이다 엄마' 전인화의 활약을 필두로 손창민의 미워할 수 만은 없는 악역 연기, 안내상의 카리스마 연기, 김희정 박원숙의 맛깔나는 감초 연기 등이 더해졌지만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사랑 놀음은 시청자를 외면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