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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무섭고 드센 26년 차 여배우 고현정. 그가 꽁꽁 감췄던 틈을 보였다. 알고 보니 웃기고 털털한, 참으로 인간적인 여자였다.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리얼하게 안 된다. 나는 베일에 싸여있지 않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하고 싶지 않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고현정. 사실 고현정이 이토록 반대하는 이유는 리얼리티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진짜 리얼리티가 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그는 "나는 카메라가 안 편하다. 배우들이 자기 진짜 모습을 카메라 앞에서 보일까? 지금 나만큼도 못 보일 것이다. 이렇게 아무 무장 없이 회의하는 연예인 봤나?"라고 제작진과 회의에서 말했다. 이게 바로 고현정의 진심이었다.
'현정의 틈' 제작진은 고현정이 왜 이렇게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는지 알게 됐고 그의 뜻대로 꾸밈없는 모습을 담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통해 취재하기로 했다.
처음에 고현정은 꽁꽁 숨은 제작진을 족집게처럼 찾아냈고 적발 즉시 현장에서 강퇴(강제퇴장) 시키며 분노를 드러냈다. 그의 불호령에 잔뜩 겁먹은 제작진. 카메라에 고현정을 담아야 하지만 두려움에 차마 제대로 담을 수 없었고 이런 제작진의 모습은 고현정의 눈에도 점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었던 것일까? 고현정은 제작진을 생각하기 시작하며 짓궂은 장난을 치고 서슴없는 이야기도 나눴다. 자신이 10년 전 썼던 일기장을 함께 읽어보며 추억을 곱씹었고 왜 도쿄를 여행지로 택했는지도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해서 처음으로 일상생활을 했던 곳이다. 아픈 곳이기도 하고 아이들과 추억도 있는 곳이다. 여기를 찍어야 다음 여행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길 안 가면 계속 마음에 걸릴 것 같았다"며 "한국에서 나는 혼자 뭘 한다거나 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굉장히 친절했고 배려를 받았던 나라다.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고현정의 고백처럼 도쿄는 고현정이 전남편과 2년여간 신혼생활을 보낸 곳이었다. 그리고 도쿄에는 곳곳에 그리운 아들, 딸과 함께했던 고현정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사실 고현정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길에서 만나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책을 쓰기 위해 만난 일본 작가의 아들을 보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그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처음으로 보여준 고현정은 신선하고 색달랐다. 우리가 알던 카리스마 넘치는 26년 차 여배우가 아니었다. 틈 많은 여자, 외로운 엄마, 그리고 여린 인간 고현정만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참 오랫동안 배우 고현정을 오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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