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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검은사막', 게임대상에 나와야 했던 이유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15-10-26 09:09

<게임기자 남정석의 기자석> '검은사막'에 대한 유감

"왜 '검은사막'은 출품하지 않았나요?"

지난 21일 열린 '2015 대한민국 게임대상' 1차 심사에서 몇몇 심사위원들은 의문을 표시했다. 지난해 말 침체된 국내 PC 온라인게임의 부흥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으며, 한국 대표 게임개발자인 펄어비스 김대일 대표가 'C9' 이후 5년만에 선보였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던 온라인게임 '검은사막'이 게임대상 심사에 아예 접수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게임대상은 예년에 비해 접수한 작품수가 현저히 적었다. '레이븐'이나 '메이플스토리2' 등이 모바일과 온라인 부문에서 워낙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이미 게임대상은 결정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데다, 올해 출시된 게임들 가운데 흥행을 한 작품이 상당히 적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선점자의 지위'가 확고해 좀처럼 흥행구도가 변하지 않는 온라인게임과 마찬가지로 모바일게임 역시 메이저사 위주의 물량 공세가 계속되면서 이제 2~3년 이상 인기 롱런을 하는 모바일 스테디셀러가 좀처럼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국내에선 각종 규제에 시달리고, 해외에선 대작들이 밀려드는 틈바구니에서 우수 인력들이 부족해지면서 국내 게임 개발력의 저하가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한 몫 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검은사막'만이 게임대상에 안 나온 것은 아니다. 네오위즈게임즈의 온라인 MORPG '애스커', NHN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하는 '프렌즈팝' 등도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독 '검은사막'의 미접수만 부각됐다. 기대가 컸기에 그만큼 실망도 컸던 셈이다.

사실 '검은사막'은 유저들이 '그래픽만 뛰어난 게임'이라는 혹평을 할 정도로 지난 11개월간 국내에서의 성과는 좋지 못했다. 새로운 시도와 함께 많은 콘텐츠를 도입하고 액션성 면에선 여타 MMORPG보다 분명 뛰어났지만 전반적으로 운영이나 콘텐츠 면에서 결과적으론 국내 유저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온라인게임 퍼블리싱을 처음으로 하는 다음게임의 운영 미숙도 보태졌다. 전작인 'R2'와 'C9'을 통해 한국형 액션게임의 길을 제시했던 김대일 대표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망작'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 게임대상에 출품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를 너무 낮추는 행동이었다. 게임대상은 심사기준이 흥행성보다는 작품성과 창작성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 냉혹하게 결정된 흥행성을 바탕으로 하는 '인기상'을 뽑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게임발전에 얼만큼 공헌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제시했는지를 평가하고 이를 격려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때로는 시장의 평가와 다소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올해부터는 해외 IP를 활용해 국내 개발진으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게임도 이제 게임대상의 심사 대상으로 폭을 넓히는 등 시장의 트렌드를 계속 반영하고 있지만 작품성에 좀 더 비중을 두는 원칙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검은사막'은 분명 경쟁력이 있었다. 대상(대통령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최우수상이나 우수상도 있고, 개발자들을 격려하는 기술창작상도 있다. 하지만 출품을 준비하던 펄어비스는 내부에서 '대상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스스로 접었다고 한다.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상당히 실망스런 대목이다. 게임대상은 게임인 스스로를 위한 잔치일뿐 아니라, 그동안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축하받는 자리다. 아무리 훈격이 낮은 상이라도 나름의 의미가 큰 이유다. 게다가 김대일 대표는 지난 2009년 NHN게임즈에서 'C9'으로 대상을 포함해 6관왕을 수상한 후 이를 바탕으로 펄어비스라는 회사를 차렸다. 게임대상 수상이 부(富)까지 안겨준 것은 아니더라도 '한국 대표 개발자'라는 명예스런 타이틀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당시 'C9'과 경쟁을 했던 게임사와 개발자들은 그동안 고생했던 김 대표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다.

접수가 끝난 후 펄어비스 관계자는 뒤늦게 "'레이븐'이나 '메이플스토리2' 등보다 경쟁력이 떨어져 포기했다"며 "'들러리'를 서기 싫어서 안했다는 계산된 행동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흥행적인 면에서 부족하다보니, 만약 상 하나도 타지 못했을 경우 개발자들의 실망감이 더욱 커질 것 같았다"며 "작품성 면에서는 경쟁력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은 미처 못했다. 좀 더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실수"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의 작품이 호평을 받는 이유는 컨트롤 실력을 바탕으로 '정정당당'하게 겨뤄 승패를 가리는 재밌는 액션게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현실세계에선 아예 출품을 포기, 후배들과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자신이 비록 수상을 하지 못하더라도, 당시의 축하인사와 고마움을 다른 이에게 기꺼이 되돌려줄 수 있는 아량은 애초에 기대해선 안되는 것이었을까? 20주년을 맞는 게임대상에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스포츠1팀 차장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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