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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수 놓듯 정성을 다해 붓질을 한다. 그런데 화선지가 아니라 실크에 그려 넣는다. 실크 위에서 새 생명을 얻은 연꽃은 봄바람에 흔들리는 처녀 마냥 새초롬하다. 윤기 흐르는 실크와 어우러져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박 화백은 '늦깎이' 화가다. 결혼 후인 30대 초반,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미대에 다시 입학해 한국화를 시작했다. 마흔 무렵인 1980년대 초반 강원도 원주에 터를 잡은 뒤,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섬유채색화 작업에 몰두했다. 박 화백이 섬유채색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한국화를 왜 꼭 화선지에만 그려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거 많은 분들이 삼베, 모시에 그림을 그린 게 생각났어요. 아, 이거구나, 실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그림을 그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지요."
박 화백의 작업은 굉장히 실용적이다. 손수건부터 시작해 넥타이, 방석, 스카프, 가리개, 커튼, 테이블보, 병풍, 한복 등 털과 나일론 종류만 빼고 천으로 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예술작품이 된다. 말 그대로 생활에 예술을 접목한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았다. 색을 내는 법이 화선지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농도를 찾기 위해 수 백 필의 천을 버렸다. 하지만 그러한 시련이 있었기에 지금의 섬유채색화가 가능했다.
"섬유채색화의 매력은 섬유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다는 데 있어요. 실크처럼 엷은 것은 엷은 대로, 무명이나 삼베처럼 두꺼운 것은 두꺼운 대로 그 질감을 살리는 거죠." 실크에는 묽게, 무명이나 삼베에는 진하게 물감을 쓴다. 실크에는 연꽃과 모란 같은 꽃을 많이 그려넣고, 삼베나 무명에는 산수화와 풍속도, 인물화 등 투박한 것을 투영한다. 종이와 다른, 우아하고 기품있는 섬유채색만의 멋이 우러난다.
박 화백이 주로 원주에서 활동한 까닭에 섬유채색화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에서 정식으로 섬유채색 분과가 생겼고, 2013년 국전에 섬유채색화 부문이 신설되면서 이제 원주를 벗어나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 화백과 그가 양성한 제자들이 꾸준히 활동을 펼쳐온 덕분이다.
"섬유채색화의 도록, 교과서를 집필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후학 양성에도 힘을 더 써서 섬유채색화의 전통을 살려나가고 싶습니다."
박화백은 2012년 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선정 대한민국전통명장이 되었다. 늦깎이로 시작했지만 하나의 장르를 개척해가고 있는 명장, 박송자 화백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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