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K-무비, K-팝에 이어 이제 전 세계가 K-패션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모델은 물론, 디자이너들의 팬덤이 형성되는 등 패션을 바라보는 시선은 들떠있다. 화려함만큼이나 치열함이 공존하고, 창의력만큼이나 지구력도 요하는 세상이 패션계다. 패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스포츠조선은 톱모델 겸 배우 이영진과 마주 앉았다. 2015년 '떡국열차'를 시작으로 또 다른 자신을 내어놓는 것에 주저 없는 이영진이 그의 패션인을 더 넓은 세계로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여섯 번째 주자는 한국 패션계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가는 남자, 에스팀의 최은호 이사다.
'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여섯 번째 인터뷰, 최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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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하고 싶은 일들은 참 많다. 그렇지만 그 욕심을 모두 채워나가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 아무나가 아닌 특별한 온리 원이 되는 비결은 최은호 이사를 통해 명쾌하게 알 수 있게 됐다. 재능과 능력이 뒷받침 된 가운데, 좋은 인맥을 가까이 둘 수 있는 인간적인 성품.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삶을 가꿔나가는 부지런한 열정이 요구된다. 최 이사에게는 이 모든 것이 아우러져 있었다. 그는 한국 패션계의 소문난 팔방미인이며 적이 없는 사람이고, 타고난 긍정주의자에 뜨거운 열정을 지닌 패션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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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이하 이)- 원래도 다양한 일을 해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다시금 새삼 놀랐어요.
최은호(이하 최): 그래도 홍보 일을 14년 했으니 가장 오래 했죠, 에스팀으로 와서 연출에 도전한 것은 이제 1년 정도가 됐어요. 그 전에는 홍보일 하며 연출은 곁눈질로 배웠죠. 유난히 이벤트 담당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했으나 그래도 주도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이-지난 해와 올해 서울 컬렉션에서 담당한 쇼가 얼마 정도 되죠? 가장 기억에 남는 쇼는 무엇인가요?
최: 지난 해 럭키슈에뜨, 미스지 컬렉션, 푸쉬버튼, 스티브J&요니P 등 9개 쇼를 연출했고, 올해는 여기에 더해 12개 쇼를 연출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입봉작인 아르케죠. 내가 섭외한 장윤주 씨가 오프닝과 피날레도 했던 것이 특히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이-와, 제가 다 본 쇼에요. 다시 생각해도 놀랍네요. 정말 어떻게 다 했나요?
최: 올해 4월에 서울 컬렉션을 하면서 7kg나 빠졌다니까요. 홍보와는 또 다르더라고요. 해보니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른 면들도 있더라고요. 조명, 음향, 런웨이 만드시는 분들 등등 모두에게 일일이 존경한다고 인사드렸었죠.
이-원래는 오래 운동을 했었죠. 그러면서도 패션에 관심이 있었나봐요.
최: 전혀요. 학교 다닐 때는 운동복만 입고 다니니까 관심이 없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게스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았을 정도에요. 물론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쇼핑다니면서 곁눈질로 따라 사곤 했었어요. 영향을 받았죠. 또 생각해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 전 부터 양장점, 양복점을 하셨던 분들이세요. 특히 어머니는 의상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작년까지 일을 하셨던 분이시고요. 어떻게 보면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재단, 가봉하는 것을 가까이서 다 봐왔고 또 어렸을 때부터 집에 패션지가 있었으니 은연 중에 영향을 미치긴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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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의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남들처럼 임용고시 준비해서 체육 선생님이나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준비 중이던 차에, 지인 중 한 분인 한 홍보대행사 과장님으로부터 행사 아르바이트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었어요. 연예인 케어하는 것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우와, 연예인!' 하면서 가게 됐죠. 그러다 그 회사 대표님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돼 취업을 하게 됐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무작정 상경을 하게 됐던 터라. 덕분에 몇 달 동안 얹혀 살아야 했던 시기도 그 때에요. 어쩌면 굉장히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지 했어요. 죄책감이나 전공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은 전혀 없었죠,
이-호기로운 도전이고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것이지만 낯선 분야에 도전한 것이잖아요. 쉽지 만은 않았을 거예요.
최: 원래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하고보니 '와 내가 이런 성격도 있구나' 싶었을 정도로 새로운 나를 많이 보게 됐어요. 또 지금껏 접하지 못한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 같은 것도 생기더라고요. 시골에서만 살던 제게는 신기한 세상이었는데, 어느 순간 잘 어울리고 있더라고요. '교사 안하길 정말 잘했다' 싶었던 순간이었죠, 물론 힘든 일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체대생 출신 이잖아요. 위계 질서에 익숙해져서 나이 어린 여자 선배에 대한 거부감도 적었고 조직사회에도 잘 어울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홍보를 한다는 것이 언론이나 브랜드 쪽에서 거부감이 있더라고요. 결국 첫 회사를 관두게 됐죠. 그 때가 상경 이후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후에 무작정 여행을 갔다왔더니 다 정리가 되더라고요.
이-그러다 이번에 패션쇼 연출에 도전해보니 어떻던가요?
최: 해보면 또 결국 사람의 일이더라고요. 모델도 사람이고 디자이너도 사람이니까. 물론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요. 여하튼 쇼 디렉터는 런웨이 안에서 모든 것을 총괄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카리스마, 결정력, 대처능력 등을 다 갖춰야 하는 역할이더라고요. 이번에 해보면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또 내가 잘 하는 부분도 파악하게 됐어요. 나이가 어느 정도 들다보니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이 되고, 잘 하는 부분도 파악이 돼요. 물론 부담도 됐어요. 첫 연출 때는 급기야 너무 긴장이 되어서 부모님 얼굴마저 생각나더라고요(웃음). 쇼가 끝나고 나니 다리가 풀려있더라고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또 하고 싶어요. 일을 하다 힘들어서 욕을 하다가도, 쇼가 끝다면 욕한 사람에게 제일 먼저 가서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있어요(웃음).
이-크리에이티브 적인 면도 요구되는 일이잖아요.
최: 맞아요. 그런데 이번에 느낀 것이 경험이 많아야 크리에이티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한상혁 디자이너의 쇼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을 예로 들자면, 디자이너의 성향 상 남들이 하지 않는 부분을 원하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짜내야 한다며 회의를 거듭하고 고민을 반복 했지만 쇼 3일 전까지도 컨펌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급기야 대표님이 빨리 하나씩 생각해보라면서 반강압적인 분위기까지 만들었죠. 그 순간 어떻게 생각해낸 것이 농구 경기에서 본 드론이었어요. 쇼장에서 드론을 띄워, 모델에게 가방을 드론으로 실어서 배달을 하자. 피날레 때 디자이너에게 주는 꽃다발도 드론으로 배달하자는 내용이었죠. 제가 이것저것 한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경험이 기억이 되고 어느 순간 아이디어로 떠오르게 되더라고요.
이-와, 사실 한상혁 디자이너의 쇼에 드론이 뜰 것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었는데도 보면서 '우와' 했어요.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디자이너에게 예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드라마틱 하더라고요. 연습 많이 한 것도 아니라면서요.
최: 2번 연습하고 쇼할 때 난리 났죠. 손 위치에 맞게 들어가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웃겨질 수도 있는 것이라 긴장감도 엄청났어요. 전파에 예민한 장치인데 요즘 쇼장에는 휴대폰도 많고 해서 걱정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다행히 무사고로 마무리 됐죠. 사실은 DDP에서 30분 전에야 허가를 해준 것이에요. 다 책임지겠다고 하고 가까스로 허가를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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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인복이 많은 것만은 정말 확실해요. 그렇지만 저 역시도 절 싫어하는 사람도 제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하죠. 하지만 일을 하면서 절대 말실수를 하지 말자는 철칙을 지키고요. 어떤 이의 단점을 생각하다가도 결국 장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편이고요. 그런 것이 결국 버릇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이-커리어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인간성이죠.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인맥관리도 중요하고. 내 커리어 전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인맥이에요.
이-이렇게 바쁜 최이사님, 쉬는 날엔 뭐하시나요?
최:쉴 때는 늘 젬마(반려견)와 함께 해요. 힘든 날엔 젬마와 무조건 남산에 가요. 혼자 젬마를 보면서 이야기 하죠. 신기하게 젬마가 뭔가 아는 눈빛으로 절 바라봐요. 그러면서 머리를 비워요. 젬마는 제게 힐링견이에요.
이-힐링견이자 패션견이 됐어요. 화보도 찍고요.
최:맞아요. 제 극성 탓도 있고요(웃음). 그런데 화보 찍는 것을 스스로도 즐기는 것 같아요. 카메라를 알아요. 그리고 가족이에요. 딸이죠, 이제.
이-최 이사님의 도전은 패션계에서 늘 이슈가 됐어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요?
최:우선 연출 일을 몇년을 더 해서 노하우를 기르고 싶고요. 현재 회사에서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하는데, F&B까지 도전을 하게 됐죠. 제가 워낙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도 해서 즐겁게 하고 있어요. 언젠가 머리가 하얗게 된 노인이 되더라도 외국인들처럼 중후한 멋을 가진 디렉터가 되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면 아지트 같은 술집 운영도 해보고 싶어요. 저의 큰 재산, 인맥들이 모두 와서 즐길 수 있는 한국식 주점이 되었으면 하는 그림입니다.
이- 참, 모델 입장에서 에스팀이라는 회사는 정말 모델 다운 모델 육성을 잘 하는 회사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모델에 이만큼 투자를 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요.
최:모델의 선두주자인 영진 씨가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네요. 저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모델은 무엇보다 패션코드를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모델은 또 모델로만 끝나지 않고, 편집샵 디렉터, 연출가, 영상 디렉터 등등 패션계에 다양한 부분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죠.패션에 한류가 너무 붙는 것은 우려가 돼요. 거품이 많으니까요. 당연히 이점도 있지만, 몇해 전만 하더라도 진짜 패션다운 모델들이 패션계에 메인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이돌들이 점령하게 됐죠. 갑자기 뜬 아이돌들이 등장해 패션 행사에 오면 패셔니스타 수식어가 붙는 식이죠. 물론 샤이니의 키나 지드래곤 처럼 정말 아이돌 들 중에도 패션을 잘 이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요즘은 패션과 거리가 먼 친구들이 국내 브랜드의 메인이 되는 상황이 한계가 있어 걱정이 되는 부분도 물론 있어요.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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