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세 번째 인터뷰,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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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쉽지 않았을 것이다.
혜-쇼에는 많이 섰지만 큰 쇼가 없었다. 그 때의 에이전시가 오디션 제의 조차 안오는 작은 회사이기도 했다. 무작정 파리로 갔다. 운이 좋아 크리스찬 디올, 루이비통 무대에 다 서고 뉴욕으로 돌아왔는데 이혜정이라는 모델의 존재감이 없더라. 결국 3,000만원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그 에이전시에서 나오게 됐다. 그런데 에이전시가 한 시즌 활동을 못하게 해버리더라. 매번 찾아가 사정했던 시간도 있었다.
이-이혜정이라는 모델을 알게 된 때가 존 갈리아노 무대에 서는 한국 모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물음표가 컸던 모델이 바로 이혜정이었다.
혜-당시에 정말 악착 같았다. 잠을 3시간을 자면서 오디션을 하루에 스무 개 이상 씩 봤다. 크리스찬 디올 오디션을 갔을 때도 번호표 100번을 받고 다른 쇼에 갔다 다시 왔다. 100번 부르고 나갈 때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아무 생각이 안날 정도였다. 워킹을 하다가 몸이 비틀어지더라. 그 앞에 조니 뎁을 닮은 남자가 보였다. 똑바로 쳐다보며 '쏘리'하고 말했다. 그 남자가 나보고 귀엽다며 뭔가를 체크하더라.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존 갈리아노였다. 에이전시한테 가서 '존 갈리아노가 나한테 귀엽다고 했어'라고 말했더니 콧방귀를 뀌길래 기대를 안했다. 그러다 나중에 전화가 왔다. 그 때가 정말 엊그제 같다.
이-그렇게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준 힘은 무엇인가?
혜-아주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내가 뉴욕에서 처음 본 오디션이 지금은 쇼를 하지 않는 어느 거장 브랜드의 쇼 오디션이었다. 늦게 가서 이미 오디션이 끝난 상태였는데, 내 생애 첫 해외 오디션이었기에 뽑아주지 않아도 되니 보기만 해달라고 했다. 그 모습이 웃겼던지 합격을 했고 피날레와 오프닝도 했다. 그러니 희망이 보이더라. 또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정신이 없기도 했다. '해야 돼'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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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지금 후배들이 외국 가고 싶다고 하면 나는 그냥 가라고 한다. 모델 일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얻는 것은 분명 있을테니 말이다. 내 경우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 더 많은 깡이나 대범함이 생긴 것 같다. 그런데 뉴욕도 다 인맥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평등한 나라는 아니더라(웃음).
이-내 경우, 영화와 모델 양 분야를 오가며 활동하느라 외국 진출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데 대단한 것은 우리 모델계가 끊임없이 외국무대에 노크를 하고 있다.
혜-송경아 선배 윗 선에도 진출한 선배들이 있었다. 그런 꾸준한 노력 끝에 예전에는 한 쇼에 아시아 모델이 1명 선다면 지금은 서너명 서게 되고 외국에 나가있는 후배들은 많지만 기회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해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다면 지금은 해외에서 시작한 친구들도 많다.
이-지금 세계 시장에서 K-패션과 뷰티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혜-굉장히 많다. 모델 쪽 한류가 커지기 이전에 밀라노에 갔는데 돔 광장에서 사람들이 강남 스타일 춤을 추더라. 피렌체에서도 TV 속 뮤직 비디오에 싸이가 나오더라. 그 다음 다음 시즌부터 모델계에도 한류 붐이 느껴지더라. 중국의 힘은 여전히 크다. 뉴욕만 하더라도 클라이언트 60%가 중국인이다. 주요 브랜드들이 컬렉션 이후에 중국에서 또 쇼를 하는데, 쇼를 더 크게 하더라. 일본은 여전히 일본이다. 다만, 과거에는 한국이 많이 뒤쳐졌다면 이제는 동등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이-한류의 영향이 크다. 한류의 힘이 미치는 곳이 중국이라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한국 스타들을 외국 컬렉션에 초대한다는 것 자체가 중국 시장을 노린 것이지 않나.
혜-아무리 아티스틱한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세일즈가 중요하기에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곳 같다.
이-평소 이혜정의 스타일이 궁금하다.
혜-수트를 정말 예쁘게 만드는 한상혁 등,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스타일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내가 정말 입고 싶은 것은 사실은 여성스러운 것이다(웃음). 그래서 회사에서 항상 내 옷을 검사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조금씩 바꿔가면서 알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청바지, 티셔츠, 운동화다. 심플한 것이 좋다. 모델일을 할 때 워낙 예쁘고 과장된 옷을 많이 입게 되니 평소에는 내추럴한 옷을 입는다.
이-이번 한상혁 쇼에서 정말 예뻤다. 기억이 난다.
혜-감사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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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로컬 디자이너들의 성장은 정말 확연히 느껴진다. 파리나 뉴욕에서 한국 디자이너들 쇼를 하면 외국 모델들이 옷 너무 예쁘다고 말을 많이 한다. 예전에 외국에서 구호 쇼를 할 때도 외국 모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갑자기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패션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도 많아지길 바란다.
이-모델들이 영화나 드라마, CF 예능에 많이 나오면서 모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모델이 입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옷에도 관심이 많아진 측면도 있다.
혜-그러다보니 요즘은 비모델 출신 스타들도 국내 디자이너들의 옷을 많이 입더라.
이-참, 그러고보니 예능에 진출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혜-다큐멘터리에도 한 번 나온 적이 있었고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농구선수 출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 것을 '우리동네 예체능' 제작진이 조사해서 알게 됐고 그렇게 잘 맞아떨어져 출연하게 됐다. 그 전에 우연한 기회에 작가와 사적으로 만난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쌀국수에 소주를 잘 먹는 내 모습을 작가님이 좋아하셨던 것도 있었다.
이-예능에까지 진출하게 된 지금, 모델 본업 외에 또 다른 분야로 확장하고 싶은 것은?
혜-운동도 그렇고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보다 하다보니 목표가 생기게 됐다. 그래서 지금 예능 등 여러가지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강의 같은 것도 조금씩 해보고 있다.
이-무서운 선생님일 것 같다.(웃음)
혜-부족한 점이 많지만 내 앞길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앞길에 대해 말해줄까. 그래서 더더욱 내 이야기를 하기 보다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그래야 미련없이 그만둘 수도 있으니까. 그런 한편, 해보지 않은 것도 많은 인생이다. 그래서 더 찾아보고 있다. 좋은 것 있으면 소개해달라(웃음).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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