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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천의 목소리'다. 전화기 너머의 인터뷰이는 수시로 자신의 정체를 바꿨다. 송강호에서 이정재로, 다시 이순재에서 한석규로. 심지어 안중근과 김홍도 같은 역사 인물까지 등장했다. 한번에 수십명과 릴레이 인터뷰를 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 그러나 이 수많은 목소리들의 주인은 단 한 명, 개그맨 겸 방송인 김학도다.
영화 '허삼관'이 개봉할 즈음 위화의 원작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고,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같은 고전과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 안중근 평전 등 다양한 책을 주제로 다뤘다. 그중에서도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낭독하다가 감정이 울컥해서 눈물을 흘렸던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김학도는 라디오와 낭독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작품을 그려보는 일이 얼마나 새로운 즐거움인지 몰라요. 청각적 상상력을 자극해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됩니다. 또 지식과 교양도 쌓을 수 있죠. 라디오 덕분에 제 삶도 변했어요. 부부싸움이라도 하고 온 날이면 청취자들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세요. 감정을 속일 수 없으니 항상 긍정적으로 살게 되더군요."
그의 성대모사는 TBS 라디오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에서도 들을 수 있다. 매일 고정 코너인 '퇴근길 디스크쇼, DJ K입니다'를 2년째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청취자들은 DJ K가 김학도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김학도의 진짜 목소리가 한번도 등장한 적 없기 때문이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시그널 음악이 깔리고, 이종환과 가상의 인물 찰리가 만담하듯 시사뉴스를 전달한다. 물론 둘 다 김학도의 목소리다. 교차로 녹음해 편집하는 것 아니냐 물으니 "절대 아니다"라는 답과 함께 이를 증명하듯 코너의 한 대목을 재현한다. 연신 감탄을 자아내는 목소리 연기다. "시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던 중에 PD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제 생각을 꿰뚫어본 것처럼 컨셉트가 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나중에는 이 코너만으로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이렇게 라디오를 종횡무진하면서 김학도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교양과 시사로 특화시켜 나갔다. 그는 자신을 '에듀테이너'라 설명한다. 지식과 교육(education·에듀케이션)을 전하는 엔터테이너라는 의미다. "코미디를 하려면 내가 망가져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코미디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나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10년 전부터 꾸준히 교양과 시사 분야에서 활동을 넓혀 왔어요. 과거 코미디를 할 때도 시사 풍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저에게 잘 맞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김학도는 1993년 MBC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올해 23년차다. 진행 프로그램 100개, 행사 진행 1000번을 넘겼다. 바둑, 골프, 영화, 경제, 주식, 책, 연예정보, 야구 중계, 유아 교육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거쳤지만, 딱 하나 못해본 퀴즈 프로그램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고 한다. 요즘엔 프로 바둑기사인 아내 한해원과 함께 바둑 용어를 빗댄 육아책을 준비 중이다. "첫 아이 탄생은 '착수', 둘째는 '한칸 띔'에 비유할 수 있겠죠. 그밖에도 양단수, 묘수, 패착 등 다양한 용어에 맞는 육아 에피소드를 정리하고 있어요. 아이들도 바둑돌을 재미로 갖고 놀고, 저도 요즘 바둑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가족과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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