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8주기 기일 맞은 故 정다빈을 추모하며…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5-02-10 16:15


8주기를 맞은 故 정다빈의 추모 영정.

매서운 추위를 몰고온 칼바람 속 눈보라를 날렸던 전날과 180도 다르게 날씨는 부쩍 포근해져 있었다. 봄을 재촉하는 변덕스러움. 미세먼지 탓에 흩뿌옇게 흐드러진 하늘 아래 그녀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다.

2월10일. 고(故) 정다빈(본명 정혜선)의 사망 8주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잊혀짐이라고 했던가. 세월의 야속함은 그녀의 밝은 모습을 대중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석시키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곡리에 위치한 유토피아추모관에 영면한 정다빈. 그녀의 환한 웃음을 닮은 꽃 세다발이 잊혀짐에 도리질하듯 바람 속에 하늘거리고 있다.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 정다빈. 그녀의 ?았던 삶의 기억이 흐르는 세월 속에 점점 마모돼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생과사의 엄숙함에 '만약'이란 가정법은 없지만 그녀가 현재 팬들 곁에 남아 있다면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거란 덧없는 상상이 머물지 못하는 바람처럼 비껴간다.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스틸컷.
지난 2000년 SBS 시트콤 '돈.com'으로 데뷔한 정다빈은 같은 해 판타지 액션 로맨스 영화 '단적비연수(은행나무침대2)'를 통해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영화 속에서 최진실의 아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또래 배우들에 비해 발군의 연기력과 귀여운 외모로 특유의 밝은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만 20세의 나이에 단숨에 주목받는 신인으로 성장했다. '제2의 최진실'로 기대를 모으던 그는 2003년 김래원과 호흡을 맞춘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를 통해 연기력을 뽐내며 대중의 큰 사랑 속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해 MBC 연기대상 신인연기상을 거머쥔 그는 이듬해 SBS 연기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톱 여배우로서의 발판을 굳혔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못했다. 큰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는 슬럼프와 소속사 분쟁 등 힘든 시기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여러 악재 속에 힘겨워하던 그는 2007년 2월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안타까운 짧은 생을 마감했다.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모습이 알려지며 생전 그의 밝은 모습을 기억하던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4년 후인 2011년 5월 22일, 그는 경기도 양평의 용천사에서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12년만에 만남을 가진 '뉴 논스톱' 출연 배우들. 정다빈의 빈 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진다. 출처=정태우 인스타그램.(2014.11.4)
지난해 11월4일에는 정다빈이 출연했던 MBC 시트콤 '뉴 논스톱'의 배우들이 12년 만에 만남을 가졌다. 정다빈의 빈 자리가 더욱 커 보였던 순간. 함께 출연했던 정태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12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뉴 논스톱' 식구들, 하늘나라 가있는 다빈 누나와 미국에 있는 (김)정화 빼고는 다 모인 듯"이라며 조인성, 장나라, 양동근, 김영준, 박경림과 함께 한 사진을 게재했다. 함께 나누지 못한 웃음꽃. 그래서 더 허전해 보였던 한장의 사진이었다.

정다빈은 사망 전날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남겼다.

복잡해서죽을것같았다.이유없이화가나서미칠것같았다.

멀미가날듯이속이힘들었다.머리가너무아파서눈물이났다.

신경질의성낼노의노예가될뻔했다.울다웃다미치는줄알았다.

내가나를 잃었다고생각했었고나는뭔가.정체성을잃어갔었다.

순간.

전기에감전이되듯이.

번쩍.

갑자기평안해졌다.주님이오셨다.형편없는내게.사랑으로.

바보같은내게.나의소중함을알게하시고.용기를주신다.

주저앉으려했던나를.가만히.일으켜주신다.

나는.이제.괜찮다고.말씀하신다.

나는.괜.찮.다.

<출처> 정다빈, 싸이월드 미니홈피 (2007년 2월 9일)

살아 숨쉰다는 건 육신의 유영이지만 마음이 숨을 쉬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괜.찮.다'는 자기 위안이 조금 더 큰 버팀목이 됐더라면….

그가 떠난 8년의 세월 속에 지금을 많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가슴 아픈 떠나보냄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연예인이든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는 어떤 이웃이든….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밝은 빛과 같은 에너지를 뿜어대던 여배우로 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쉬는 정다빈. 부디 편안하게 영면하길….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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