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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호라는 이름을 검색해보면 약초 '하수오'가 뜬다. "농담삼아 이야기하지만, 하수호보다는 약초 이름인 하수오가 더 검색이 많다. 흰 머리도 검게 만들어준다는 신비의 약초. 하하."
사실 하수호를 가만 지켜보면, 악역보다는 여운이 남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외면에 반해 속은 슬프고 감성적인 면이 엿보인다.
"사실 촬영장에서 파이팅 넘치는 스타일이다. 함께 작업한 감독님들도 '넌 참 파이팅 넘치게 일한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 성격인데 우연히 밥집을 갔다가 서빙하는 이모들이 자기들이 무속인이라고 하더라. 원래 그런 거 안믿는데, 나보고 눈이 슬프고, 따뜻한 기운이 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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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호의 꿈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TV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운좋게 한 번에 합격했다. 정말 4년동안 꿈같은 생활이었다. 너무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입학할 때는 그저 세트를 짓고, 허드렛일을 하는 노역만 하다가, 졸업 무렵에는 좁은 우물일 수 있겠지만, 주역을 맡게 됐다. 그 흥분감이 정말 컸다."
하지만 프로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했다. "늦게 프로에 첫 발을 들였다. 26, 27세 때였다. 계속 오디션만 보려고 기웃거리다 보니 경제적 위기가 찾아 오더라. 통장 잔고가 20만 5364원 남았다. 액수까지 기억날 정도다. 아무리 아껴써도 한 달에 35만원은 쓰지 않나. 먹을 것 제대로 안 먹고 살았는데도, 돈이 없더라.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당시에는 몇 번만 더 시도해보고, 안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 밑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벼랑 끝에서 희소식이 들렸다. "영화 '의형제' 오디션이 붙었다고 하더라. 그날 너무 좋아서 8층 높이의 건물을 뛰어서 오르내렸다. 그래도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더라." 이때부터 '닥터이방인'까지 끊이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써주셨던 감독님이 차기작을 할 때, 또 생각해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장훈 감독님이 영화 '의형제'에 이어 '고지전'에도 써주셨고, 한희 감독님이 '닥터진'에서 '기황후'도, 진혁 감독님도 '주군의 태양'에 이어 '닥터이방인'까지 캐스팅해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몇 작품 안했지만,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가장 좋은 배우의 조건은 연기력도 외모보다 파이팅 넘치는 성실함이 아닐까. 하수호와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를 왜 또 쓰고 싶었던지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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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