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6주 결방에 대처하는 '개그콘서트' 의 자세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4-05-27 08:24



전 국민의 가슴을 울린 세월호 참사. 앞날이 구만리인 학생들이 꽃잎 떨어지듯 안타깝게 희생됐다. 온 나라의 기가 꽉 막힌 상황. 방송은 뉴스에 집중됐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 정상 방송은 힘들었다. 그 중 가장 큰 타격은 음악과 개그 프로였다. 바다 위에서 피눈물을 흘리는데 춤추고 노래할 수 없었고, 육지에서 땅을 치는데 희희낙락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한달여. 시간이 흘렀다. 음악 프로를 포함, 어지간한 예능프로그램은 재개됐다. 일부 개그 프로도 마찬가지. 하지만 국민 코미디 KBS '개그 콘서트'는 신중했다. 사건 후 5주 연속 결방했다. 방송 출연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출연하던 개그맨도, 프로그램도 위기였다. 그리고 지난 25일, '개그콘서트' 무대 세트가 다시 세워졌다. 6주만에 다시 시작된 간판 개그 프로. '그 날' 이후, '개콘'은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돌아왔을까.

'장기결방'의 거대한 파도, 개편의 보드를 타고 넘다

남들은 위기일 수 있다고 했다. 한참 잘 나갈 때 중단된 방송. 천안함 사태 등 국민적 참사의 전례로 볼 때 결방 장기화는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통상 두가지. 넋 놓고 휩쓸리거나, 적극적으로 맞서 타고 넘는 경우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우울감을 애써 떨치고 후자를 선택했다. 결방으로 녹화분이 남아있었지만 기존 코너를 점검하고 새로운 코너를 준비하는데 예고 없이 주어진 시간을 활용했다.

그렇게 흐른 한달여. 방송 재개에 맞춰 '개콘'은 변화와 함께 돌아왔다. 인기 프로그램 대거 폐지를 선언했다. 폐지되는 코너는 '뿜엔터테인먼트', '편하게 있어', '안생겨요', '황해' 등 4개 코너. 대신 시의성을 높였다. 김준현 서태훈의 정치 풍자 새 코너 '존경합니다'가 대표적. 세월호 참사 이후 팽배한 정·관에 대한 불신을 풍자로 전환한 시의적절한 시도였다. 끝이 아니다. 프로그램 관계자는 "이번에 폐지된 프로그램 외에 이번주 녹화에서도 새 코너가 공개된다. 이미 3월부터 준비해 온 코너로 아이디어 회의 및 연습을 마친 상태다. 컨펌도 받은 상태라 방청객 반응에 따라 살아남을 코너가 정해질 것 같다. 이밖에도 폐지를 논의하고 있는 코너들이 많다. 새로운 모습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집단 우울감'에 빠진 국민에게 '힐링'의 피난처가 되다

너무 이르면 어색하고, 너무 늦으면 잊혀진다. '개그콘서트' 방송 재개 시점. 타이밍 포착이 쉽지 않았다. 이른 건지 늦은 건지에 대한 판단은 대중의 무의식 속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아픔을 느낀 국민이라면 누구든 크든 작든 '집단 우울감'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 병원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생자와 그 가족에게 빚진 마음과 별개로 마음의 상처에 대한 힐링이 필요해졌다. 우울한 소식으로 가득찬 '분노 유발' 뉴스나 시사 프로가 아닌 잠시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피난처'가 필요했다. 이런 맥락 속에 많은 사람들은 '개그콘서트'의 방송재개를 기다렸다. 타 방송 개그 프로그램보다 재개가 늦춰지면서 수요심리가 조금씩 더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시작된 방송. 높은 시청률 수치로 나타났다. 26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개그콘서트'는 전국 시청률 15.9%, 수도권시청률 16.9%를 각각 기록했다.


방송 재개에도 '절차'와 '품격'이 있다

대한민국 대표 개그 프로그램. 방송 재개에는 나름의 '절차'와 '품격'이 필요했다. 출연진과 제작진은 결코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25일 방송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오프닝으로 문을 열었다. 검은색 수트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단체로 등장한 100여명의 출연진들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웃음전파를 재개하기 전 불행한 일을 당한 희생자들을 위한 조촐하지만 엄숙한 의식이었다. 고참들이 말문을 열었다. 김대희는 "세월호 침몰은 믿고 싶지 않은 사고였습니다. 국민 모두가 가슴아파했고 그 슬픔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국민들과 함께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박성호는 "과연 세상에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요. 저도 아들을 기르는 아버지입니다. 이번 사고로 인해 그 누구보다 고통 받았을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준호는 "사고 현장에서 사고 후 수습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서 아직 대한민국 희망을 봅니다. 이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위안이 되고자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애도를 품은 양해 속에 각오를 실었다.

끊임 없이 새로워지지 않는한 퇴보하고, 고이는 순간 썩기 시작하는 물 같은 개그 프로그램의 속성. 최장 기간 결방의 외부적 위기를 스스로의 매너리즘을 돌아보고 더욱 새로워지는 기회로 삼은 '개그콘서트'의 위기 관리 매뉴얼이 세월호 사건 수습 과정과 정반대 편에 서 있는 듯 새롭게 느껴진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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