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방송가 트렌드 변화, '남자 콘텐츠'를 주목하라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3-03-17 14:17 | 최종수정 2013-04-12 08:38


KBS 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천호진. 사진제공=KBS

최근 대중문화 영역에서 '남자 콘텐츠'가 급부상하고 있다. 극장가에선 '7번방의 선물'이 흥행 역사를 새로 썼고, 안방에선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군대 시트콤 tvN '푸른거탑'의 인기 또한 심상치가 않다. 아빠, 부성애, 군대 모두 '남성적' 성격이 강한 소재들이다. 남성 콘텐츠가 즐겨 제작되지도 않았고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던 과거와는 여러 면에서 사뭇 다른 풍경이다.

최근 종영한 '내 딸 서영이'도 그런 흐름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아버지를 버리고 결혼한 딸과 그런 딸을 멀리서 지켜보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부장적인 권위가 해체된 이후의 아버지의 존재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아버지가 가족과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냄으로써 울타리 밖 주변 인물로 밀려났던 아버지를 다시 가족 안에 자리매김시켰다.

연예인 아빠와 아이들의 여행기를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변화된 아버지상에 대한 다양한 예시를 보여준다. 초반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아이들의 순수한 매력과 돌발적인 상황이 주는 재미가 인기를 견인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아빠와 아이의 관계가 변해가는 과정이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엄한 아버지에서 다정한 아버지로 변해가는 성동일, 아이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는 김성주, 아이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친구 같은 아빠 이종혁 등 다양한 아빠들의 모습에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된 아버지상을 엿볼 수 있다.


사진제공=MBC
변화한 남자들의 모습은 이뿐만 아니다. 완벽한 조건으로 여성들의 판타지를 대변해주는 존재에 머물지 않고, 씩씩한 '캔디'나 지고지순한 '순정파'처럼 기존 여성 캐릭터의 영역에 뛰어든 남성 캐릭터도 인기를 끌고 있다. MBC '마의'의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은 뛰어난 의술을 발휘해 천민 출신이라는 한계를 딛고 어의가 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KBS2 '힘내요 미스터김'의 김태평(김동완)은 성이 다른 네 아이를 키우는 '총각 엄마'인데다 직업은 가사도우미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일과 사랑을 쟁취하는 두 캐릭터는 '캔디'의 남자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온몸 바쳐 뒷바라지를 했지만 끝내 그 순정을 버림받은 후 처절한 복수극을 펼치고 있는 SBS '야왕'의 하류(권상우)는 과거 여러 신파극 속의 여성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남자들의 전유물인 군대도 예능의 소재로 쓰인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얘기가 군대 얘기이고, 그보다 더 지루한 얘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푸른 거탑'은 군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실감나게 표현해 매회 화제를 뿌리고 있다. 군필 연예인들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KBS2 '명 받았습니다'의 실패 이후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던 '군대 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처음으로 증명해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년병장부터 이등병까지 계급별로 세분화한 개성있는 캐릭터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톤, 여기에 메디컬 드라마 '하얀 거탑'의 비장한 OST를 도입해 웃긴 상황일수록 진지함을 과장한 연출로 웃음의 층위를 넓혔다. 여자들은 모르는 군대용어에 대한 자막 해설과 아기자기한 만화적 CG도 군대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4월부터는 MBC '일밤'도 연예인들의 병영 체험을 담은 리얼 버라이어티 '진짜 사나이' 코너를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제공=tvN
이처럼 남자 콘텐츠가 방송가에서 새롭게 주목받게 된 데는 대중문화 소비 주체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전통적인 성 역할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남성들이 자신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표현하기 시작했고 좀더 적극적으로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게 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려는 방송가의 노력이 결합되면서 뒷전에 밀려나 있던 '남성 콘텐츠'의 재발견이 이뤄졌다.

'푸른 거탑'을 연출하는 민진기 PD는 "주로 여성을 타깃으로 했던 기존의 많은 드라마와 예능이 이제는 식상함을 주고 있기 때문에 시선을 남성 쪽으로 돌리게 됐다"며 "남자들이 콘텐츠 소비의 주체가 됐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체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성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일이 드물었지만, '푸른 거탑'의 경우를 보면 게시판이 남자들의 댓글로 도배가 돼 있다. 상당히 적극적인 변화로 보인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좋아하는 콘텐츠를 즐기고 서로 교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이를 가능하게 한 배경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남성 콘텐츠가 남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도 대중적 인기의 발판이 됐다. '아빠 어디가'는 가족 시청층을 겨냥했지만, 오히려 20~30대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 반응이 상당히 뜨겁다. 미래의 남편상이나 가족에 대한 밑그림을 프로그램 출연자들을 통해 한번쯤 꿈꾸고 생각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 독려, 다자녀 장려 프로그램이란 우스개소리까지 생겼다. '푸른 거탑' 역시 마찬가지다. 유명 CF나 드라마의 명장면을 패러디해 군대라는 공간을 경직되지 않게 표현함으로써 시청층의 폭을 넓혔다. 민진기 PD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 군인 남자친구를 둔 여성들, 대학 선후배를 군대에 보낸 여성들처럼 여성들도 누구나 군대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며 "대본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아이템을 채택하고 그것을 리얼버라이어티가 아닌 드라마로 만들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