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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한국영화의 '신르네상스'라 불린다. 9월 13일 현재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56%다. 2006년 이후 최고 수치다. 그만큼 극장가에서 우리 영화가 잘 나가고 있다. 2012년 흥행 10위권내에 한국영화가 7편이나 포진해 있다. 지난 7월 개봉한 '도둑들'은 1000만 관객을 뛰어넘어 역대 흥행 1위 '괴물'의 기록까지 깰 태세다. 그런데 이런 뿌듯한 업적보다는 어두운 면을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왜일까? 한국영화계의 오랜 관행인 교차상영이 또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엔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피에타'가 피해자가 됐다. 김기덕 감독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편법과 독점과 마케팅 등 이렇게 불리한 게임에선 내가 아무리 착해도 화가 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주로 흥행성이 떨어지는 저예산 영화들이 이런 홀대를 받는다. 반대로 상업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영화나 대형 배급사들이 직접 투자, 배급하는 영화들은 '빵빵한' 지원을 받게 된다. 대형 배급사들이 교차상영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다 높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올해 흥행에 성공했던 한 영화에 대해 "작품성과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영화였다. 하지만 대형 배급사의 영화였기 때문에 스크린수와 마케팅 등에서 너무나 많은 이득을 봤다"고 밝혔다.
교차상영을 옹호하는 대형 배급사 측은 "영화의 스크린수와 배급은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화계에선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대형 배급사 측의 인위적인 스크린수 조정과 교차상영으로 인해 독립영화와 저예산영화들은 제대로 상영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 관계자들은 "대형 배급사들이 돈 때문에 예술을 버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게다가 대형 배급사 측은 일부 영화의 교차상영을 결정하면서 좌석점유율이나 예매율 등이 다른 영화보다 낮다고 주장하지만, 이 마저도 사실과 다른 경우가 있어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한 영화 관계자는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받는 우리 감독들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자체를 고민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국내 영화 산업계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교차상영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관객들이다.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들이 제대로 상영될 기회를 박탈당하듯, 관객들은 보고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강제성 있는 규제책 필요해
지난해 10월,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영화단체, 업계가 뭉쳐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를 발족했다.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는 올해 7월 대기업에 의한 영화시장 독과점 문제 해결 방안을 담은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 선언문'을 발표했다. 저예산 영화의 1주일 이상 상영기간을 보장하고, 배급사가 합의하지 않는 이상 교차상영 등 변칙적인 상영을 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 선언문이었다.
영화계 전반에 교차상영으로 발생하는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 산업계엔 큰 변화가 없었다.
2011년 배급사별 점유율을 살펴보면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등 1~3위의 점유율이 50%를 넘는다. CJ E&M이 32.7%, 롯데엔터테인먼트가 15.4%, NEW가 9%였다. 올해 역시 CJ E&M이 20.2%,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가 15.9%, 롯데엔터테인먼트가 14.6%를 기록해 '빅3'의 점유율이 50%를 넘겼다. 최상위권간 격차가 줄어들었을 뿐, 대형 배급사들이 국내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는 건 여전하다.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가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강제성 없는 권고안인 탓에 대기업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강제성이 보장된 실효성 있는 규제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