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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류덕환-박세영, 서브커플로 흥행하나?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2-08-15 16:31



원나라 노국공주(박세영)가 자객의 검에 목이 베어 죽음직전의 위기를 맞는다. 공민왕(류덕환)은 노국공주와 고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호위무사인 우달치 최영(이민호)에게 신의를 구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이에 최영은 하늘로 통한다는 천혈을 통해 고려시대에서 2012년 서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고, 강남 코엑스에서 성형외과 전문의 유은수(김희선)를 발견하고, 그녀를 마타와 같은 신의로 착각하고 고려로 곱게(?) 납치해 오는 데 성공한다.

은수의 눈앞에 죽어가는 노국공주. 목숨을 위협받자 일단 노국공주를 살리고 보는 은수. 그럼에도 은수는 과거로 천혈을 통해 타임슬립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역사물을 찍는 영화촬영세트장이라고 생각한다. 노국공주는 촬영도중 얘기치 않은 부상을 당했을 뿐이라고.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강남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고, 택시도 없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수상한 마을에 수상한 사람들뿐이지만 의심할 겨를이 없다. 이상한 남자들이 자신을 붙잡고 죽이려 든다. 빨리 도망쳐야 한다. 그리고 가야한다, 강남 코엑스로.


최영은 자객에게 납치당한 은수를 구하고, 노국공주를 살렸으니 약속대로 그녀를 강남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안심시킨 후, 천혈이 있는 장소로 데려간다. 묘한 기운이 뿜어 나오는 천혈. 저 구멍으로 들어가면 강남으로 갈수 있다고? 은수는 반신반의하지만 일단 이상한 복장, 이상한 사람들로 벗어나고 싶다. 그 순간 최영에게 신의를 돌려보내지 말라는 어명이 떨어진다.

무사에게 있어 약속은 목숨과 같은 것. 은수와의 약속과 공민왕의 어명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 좌절하는 무사 최영. 공민왕의 어명은 자신에겐 최영보다 신의 은수가 더 필요하니, 최영에게 차라리 죽으라는 메시지와 같았다. 최영에게 어명을 내린 공민왕조차 깨닫지 못한 걸, 노국공주가 날카롭게 꼬집는 대목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때문에 은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최영은 좌절하고, 그녀가 우발적으로 찌르는 칼을 피하지 않는다.


최영의 배를 찌른 사람은 은수였지만, 수단은 최영의 검이었다. 즉 은수가 최영을 찌르지 않았더라도 무사의 약속대신 어명을 택한 그는 자결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 혼란스러워진 건 은수였다. 칼을 피하지 않은 최영을 이해하기도 힘들지만, 졸지에 살인자가 될 수도 없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바보스러울 만큼 강직한 남자 최영을 살리고 봐야 한다.

그래서 유은수가 우달치 최영을 찌른 '신의' 2회는 극을 발전시킬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다. 은수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자결을 생각했던 최영이, 그의 칼을 대신 든 은수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고, 은수가 가져온 칼(메스)로 3회에선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최영은 이미 죽었고, 은수로 인해 부활을 예고한 셈이다. 때문에 최영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어떻게든 은수를 강남 코엑스로 돌려보내는 일. 그것은 이제 고려와 공민왕을 지키는 것보다 최영에겐 더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신의'는 2회 만에 뚜렷한 결과물을 낳았다. 주인공인 최영에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유은수)에게 의해 생사를 오가면서, 세상에 미련 없던 그에게 뚜렷한 책임감과 목적의식을 심는다. 은수에게도 마찬가지다. 미래와 과거를 통하는 천혈이 닫혔다. 은수가 품어야 할 의심. 그것을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강남 코엑스를 경험한 최영이다. 그 남자가 죽는다면, 그 남자가 사라진다면, 은수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과 위기에 동시에 놓인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당분간 신의의 재미는 보장될 수 있다.

그런데 신의는 이를 뛰어넘을 만한 재미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바로 스토리에 생기를 불어넣는 캐릭터들이다. 주인공 유은수-최영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기철(유오성)은 2회 단 3분가량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포스와 매력을 선보였다. 그 뿐인가. 주변인물들 한명 한명이 뚜렷한 개성과 목적의식을 가지면서, 극의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다.



우달치의 부대원 중 2인자로 최영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배충석(백광두)과 경공의 달인으로 오직 대장 최영밖에 모르는 바보 오대만(김종문)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와 견줄만한 기철의 수하이자 음공의 고수 천음자(성훈)는 신비감과 더불어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무예와 의술을 겸비한 장빈(이필립)은 은은함과 묵직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들 각각의 캐릭터가 보다 더 입체화되는 과정을 겪을 때, 극의 재미와 긴장감도 상승한다.

여기에 신의의 또 다른 갈등의 축 공민왕(류덕환)과 노국공주(박세영)커플이 있다. 언뜻 드라마 '뿌리깊은나무'의 어린 이도를 떠올리게 하는 공민왕은, 원나라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 고려의 왕이 될 거란 사실에 자괴감을 떨치지 못한다. 때문에 그의 행동은 어떠한 자신감도 확신도 없다. 그래서 신의 유은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자는 간신배의 말에 홀릴 수밖에 없고, 우달치 최영과의 신의를 깨고 곤경에 빠뜨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공민왕의 복잡한 심경을 배우 류덕환은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류덕환의 연기 내공보다 더욱 인상적인 건, 바로 노국공주 역에 박세영이다. 생사를 오가는 최영을 두고 공민왕이 그가 어명을 지켰는지를 먼저 논할 때, 노국공주는 최영의 목숨부터 살리는 게 수순임을 아는 현명함을 보였다. 시청자입장에선 지격지심에 빠져 왕의 위신부터 앞세운 답답한 공민왕의 태도에 통쾌한 일침을 가한 노국공주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공민왕을 향한 노국공주의 일침 안에 냉정함과 차가움 속에 건조함을 담을 줄 아는 박세영의 연기력 또한 인상적이었다. 아직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보단 불신의 장벽에 가로 막힌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대립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힘이 느껴진다. 이렇듯 극을 앞에서 끌어가야 할 이민호-김희선커플의 짐을 뒤에서 덜어주는 류덕환-박세영 커플이 있기 때문에, 신의는 극적인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드라마가 흥하려면 주인공커플 못지않게 서브커플이 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류덕환-박세영은 매우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다.

<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 때(http://manim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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