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에로틱칵테일] 타인의 취향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10-09 16:36


[에로틱칵테일] 타인의 취향

있는 속내 없는 속내 다 털어놓는 베스트프렌드였던 P언니와 내 사이가 서먹해진 건 몇 개월 전에 만났던 그 남자 때문이었다. 그는 P언니의 아는 후배였고, 우리집에서 열린 홈파티에 게스트로 처음 등장했다. 나는 그날 자타공인 '꽃돌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키 크고 잘생기고 어리기까지 한 그 남자가 곁에서 대놓고 호감을 표시하고 자꾸 눈이 마주치는 게 설레고 좋았다.

그 좋은 기분에 너무 많이 마셔댄 게 문제였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취해서 호스트로서의 실례를 무릅쓰고 방에 가서 들입다 누워버렸다. 밖에서 들리는 지인들의 웃음소리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가수면 상태에 빠질 무렵, 문득 누군가 나를 잡아 끄는 것이다. "이렇게 먼저 자는 게 어딨어요, 밤새 술 마시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그놈의 스킨십이 뭔지, 그의 손과 내 손이 그저 잠시잠깐 마주쳤을 뿐인데 나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고, 뭔가 동시에 찌릿~ 하고 전기가 통하는 느낌과 함께 어느 순간 우리가 깊은 키스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날 밤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 그 자체이므로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술기운이라는 게 뭔지, 그 찌릿 하는 전기가 또 뭔지, 우리의 '사건'이 일어나던 곳이 내 지인들이 거실에 모여앉아 술을 먹고 있던 그 순간 우리집 안방이었던 것이다!

그 사정을 알게 된 P언니의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다른 사람이 다함께 있는 공간에서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느냐, 둘 다 내가 아는 사람인데 예의가 너무 없었다, 그런 네가 낯설고 이물스럽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남녀가 동시에 눈이 맞아 시간 장소 불문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는 건 오히려 더 흥분되고 짜릿한 경험이다, 앞으로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입장이었다.

사실 내 인생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섹스들은, 대학 시절 한밤중에 빈 강의실에서 했던 섹스나 휴일 근무하던 남자친구의 사무실에서의 섹스, 공원 산책길 한가운데 공중화장실에서의 섹스 등등 언제 누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스릴 속에서 들킬세라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그것들이었다. 정성 들인 애무나 긴 시간이 필요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상대적으로 P언니는 그런 식의 경험은 상상도 하기 싫은 것. 그녀는 편안하고 깨끗한 침대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둘만의 공간 속에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며, 반드시 마음이 편해야만 섹스에 몰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눈에 나는 비상식적이며 충동적이고 철없는 철부지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참 멀어진 P언니를 붙잡고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한참 물고 늘어진 끝에야 나는 이 사실을 들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탈의 욕망과 욕구가 있으니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변명이 한심한 핑계임도 자각했다. 은밀한 것에서 성적 충동을 느끼기보다 편안한 것에 더 욕망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요소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해를 구했다.

때로는 다른 성적 욕망과 욕구들, 취향들이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수도, 실망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것. 베스트프렌드를 잃을 뻔해가면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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