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경이 바뀌면 좀 달라질 것을 예상했지만 역시 국내 안방극장에서 범죄수사물은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포세이돈'은 편성 불발과 주연배우들의 하차로 제작이 중단되는 우여곡절 끝에 기사회생한 작품이다. 하지만 제작 상황 못지 않게 우려가 됐던 부분은 바로 장르.
고영탁 KBS 드라마제작국장은 '포세이돈'의 편성 여부가 관심사였을 당시 "KBS가 앞서 '강력반'이라는 수사물을 선보였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이 부분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역시 "한국에서는 수사물은 안 된다"는 징크스를 깨지 못하는 것인가. 시청률(4회까지 전국 평균 6.7%, AGB닐슨 기준, 이하 동일)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국내 안방극장에서는 그동안 수사물과 법정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둔 예가 많지 않다. 70~80년대 MBC '수사반장'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
이미 식상한 소재로 전락
수사물, 첩보물, 추리물 등은 미드나 일드와 곧잘 비교되며 여전히 질적 성장을 이뤄야 하는 장르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이미 식상한 소재로 자리를 잡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는 소수가 열광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미드와 국내 드라마를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과 맥락이 닿아 있다.
임동호 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국장은 "아침이나 저녁 일일극을 제외하면 젊은층이 드라마를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다"면서 "수사물 등은 국내에서 젊은층이 전반적으로 선호하는 소재가 아니다. 지금의 트렌드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 '파스타'처럼 전문적인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점차 세련되고 다양화되는 추세에서 고전적 형식의 수사물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8년 방송된 SBS 드라마 '신의 저울'은 흥미진진한 추리극으로 독특한 재미를 불러일으켰다. 그 덕분에 드라마를 집필한 유현미 작가가 그 해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시청률(11.9%)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눈길을 끌만한 새로운 소재가 가미되지 않는다면 장르가 가진 한계로 이미 시청자 유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열악한 제작 환경이 제약
국내 수사물은 제작 여건상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임 국장은 "미국에서처럼 전폭적인 지원아래 탄탄한 구성과 다양한 이야기 구조, 복잡한 심리묘사가 이뤄지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환경이다. 전문성 있는 작가진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사물이나 법정드라마와 달리 국내 의학드라마는 흥행불패를 자랑한다. 의학드라마는 설정 자체가 복잡하고 심리적 묘사가 많은 데다 구성이 탄탄하다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근복적인 문제를 다루며 휴머니즘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의학드라마와 달리 정의 추구라는 이상과 실제 현실과의 괴리를 꼬집어야 하는 법정드라마나 수사물은 접근 감성부터 차이를 보인다. 자료 수집에 제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권력을 그려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또한 똑 같이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고 해도 경험의 빈도가 다른 병원과 법원, 경찰서 등의 공간적인 차이가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갈라 놓게 된다.
|
|
수사물 등이 흥행 참패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2009년 방송된 KBS2 '아이리스'(28.4%)와 올 초 방영된 SBS '싸인'(18.7%)은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아이리스'는 한반도의 통일을 막으려는 거대 군산복합체의 실체를 밝히려는 내용의 첩보물이다. 이 드라마는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에 기초해 이데올로기, 테러, 멜로 등 복합적인 요소가 가미돼 첩보물로는 안방극장에서 이례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 '싸인'은 빠르고 촘촘한 구성과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로 한국형 의학수사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때문에 '강력반'(7.4%)과 '포세이돈', 2009년 방송된 KBS2 '파트너'(9.9%) 등과 같이 매회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형식과 범죄집단을 추적하는 내용의 전형적인 수사물이나 법정드라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소재가 접목된 변종 작품들이 등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명은 기자 dram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