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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임순례 감독 "개에게도 인간의 기준 적용하는 팍팍한 세상에게..."

이예은 기자

기사입력 2011-06-10 17:15


주류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져온 임순례 감독이 동물 사랑을 주제로 한 '미안해, 고마워'를 내놓았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인간에게만 혈통이나 외형을 따지는 게 아니에요. '믹스견'은 입양되기도 힘들답니다."

한때 수의사를 꿈꿨다는 영화인. 푸근한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인 임순례 감독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든 흥행 감독이면서 동물 보호 시민단체 '카라'의 대표이기도 한 임 감독은 최근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담은 '미안해, 고마워'를 내놓았다. 임 감독을 포함한 감독 네 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4편을 묶었다. '작은 영화'지만 이효리 최강희 등 동물 애호가 연예인들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좋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임 감독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한 번 더 인간보다 약자의 입장에 서 있는 동물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라며 웃었다.

데뷔작 '세 친구'부터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에서 늘 주류에서 밀려난 자들의 설움을 따뜻하게 바라봐 온 임 감독은 "어렸을 때 돈 없고 못 배운 사람들이 주로 사는 가난한 동네에서 지내면서 형성된 나의 정서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보다 늘 약자일 수밖에 없는 동물에 대한 애정 역시 여기서 비롯됐다.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긴 했는데, 불교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불교에서는 생명 간에 차이를 두지 않죠. 그래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명 간에는 차이가 없다고 봐요. 동물, 특히 개라도 혈통 있는 유명한 품종보다는 '믹스견(잡종)'에 더 애정이 가요." 임 감독은 인간을 판단할 때 따지는 외모나 집안 같은 조건이 동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세상이라고 비판했다. "개를 입양보내려고 해도 품종이 좋아야 해요. 한국에서는 믹스견을 입양시키기 힘들어요. 오히려 외국인들은 한국산 믹스견들에게 독특하다면서 꽤 관심을 가져요. 한국이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듯이, 입양이 안 되는 믹스견은 해외로 입양보내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임 감독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직접 한 말을 빌리면 "동네 개들을 다 업고 다녔다"고. "동물이 짧은 줄에 묶여 구속당하는 게 굉장히 싫어서 늘 줄을 풀어주곤 했어요. 시골에선 개한테 물리면 그 개 털을 태워서 재를 뿌리면 낫는다는 민간요법이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가 개에 물리니까 그 어머니가 개 털을 깎으려고 했는데, 제가 크게 반발했대요. 죽이는 것도 아니고 털만 깎겠다는데…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저를 보면 그 때 일이 섭섭하다는데,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네요.(웃음) 또 이웃집 어른이 근처에 사는 고양이를 드셨다고 해서 3년 동안 인사를 안 한 적도 있어요. 옛날에는 관절염에 좋다는 속설이 있어서 동네 고양이도 많이 잡아먹었죠."

임 감독은 한국에서의 애완동물 문화가 책임을 동반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애완용으로 들여온 동물 수는 한국전쟁 이후에 급속도로 늘어났다고 봐요. 그 전에는 반려동물이라는 개념 없이, 집집마다 자연스럽게 동물들이 있었고 개체 수도 훨씬 적었을 거예요. 그런데 급속히 산업화가 되면서 단독주택도 별로 없어지고, 생활은 나아졌는데 인간의 편의를 중시하는 문화가 생기다 보니 반려동물도, 버려지는 동물도 늘어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억압된 환경에서 살다 보니 고양이같은 경우엔 개체수도 이상 증식하는 것 같고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임 감독은 동물이 인간과 비슷하게 감정을 느낀다는 점을 확실히 느꼈다고. 오점균 감독의 에피소드 '쭈쭈'에 등장한 웰시코기 '사랑이'가 영화 스태프들이 촬영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더니 '뭔지 잘 모르겠지만 힘을 내야겠다'는 자세를 갖더라는 것이다. "말이 안 통해 모를 뿐이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찍을 때도 소 '먹보'가 가끔은 하기 싫은 연기를 할 때 남들이 하도 열심히 하니까 '에이 한 번 해 주지'라는 심정을 드러내는 느낌을 받았어요. 동물도 같이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하면 피드백을 준답니다."

자택에서 '믹스견'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임 감독은 여전히 지방에서 촬영을 하다가 꼭 하루 시간이 비어도 개들의 산책을 위해 서울까지 달려오는 동물 애호가다. 유난히 동물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에게 "동물에 죽고 못 살 거면 어려운 사람이나 도우라"는 사람들도 많이 보는데, 임 감독은 이들에 대해 "그런 말 하는 사람 치고 어려운 사람 돕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고 비꼬았다. "물론 사람도 어렵지만 말 안 통하는 동물은 더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이제는 동물에 관한 따뜻한 시선이 좀 더 나와도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예은 기자 yeeuney@sportschosun.com


'미안해, 고마워'의 포스터. '내 동생' 에피소드의 아역배우 김수안과 백구 강아지가 등장한다. 사진제공=올댓시네마

노숙자와 유기견의 우정을 다룬 에피소드 '쭈쭈'의 한 장면. 사진제공=올댓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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