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랜드가 삼성을 눌렀다. 1패 이후 2연승.
1쿼터=팀파울, 그리고 김태술
삼성 코칭스태프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고, 큰 경기를 많이 치러본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 역시 굳은 표정이었다.
전자랜드는 이대현을 주전 파워포워드로 내세웠다. 1, 2차전 파울 관리로 어려움을 겪던 루키 강상재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였다. 이대현은 미드 레인지 점퍼가 좋은 선수. 전자랜드 입장에서는 3차전 초반 '히든 카드'였다.
삼성 이상민 감독은 "2차전은 서서 플레이했다. 다시 한번 기본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은 1차전과 2차전의 움직임이 완전히 달랐다. 전자랜드의 프레스에 2차전에서 당했던 가장 큰 이유. 물론 삼성이 이 프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움직임을 준비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전자랜드의 페이스였다. 이대현이 깔끔한 미드 레인지 점퍼로 시작했다. 삼성은 3차전에서 맞불을 놓았다. 스타팅 멤버에 김태술과 문태영을 기용했다. 전자랜드는 속도를 높혔다. 백 코트가 늦어질 수 밖에 없는 삼성의 스타팅 라인업 약점을 공략했다. 박찬희가 두 개의 속공을 만들어냈다. 9-3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삼성은 문태영 대신 이관희를 투입했다. 상대 속공에 대한 세이프티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
이때, 강력한 변수가 발생했다. 판정이 접촉에 대해 상당히 민감했다. 무더기 파울이 불렸고, 전자랜드는 6분40초를 남기고 팀 파울에 걸렸다. 김태술과 김준일이 연속 자유투를 얻었다. 팀이 밀리는 상황에서 얻는 자유투는 확실히 의미가 있다. 흐름이 중요한 농구에서 분위기를 차분하게 반전시킬 수 있고, 팀을 정비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불리했던 삼성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었던 부분.
경기와 조금 동떨어진 부분이지만, 이때 나온 차바위의 임동섭에 대한 수비 움직임은 인상적이었다. 오른쪽을 좋아하는 임동섭에서 왼쪽을 완전히 열어주면서 대비했다. 결국 임동섭은 왼쪽으로 돌파한 뒤 3점슛을 쐈지만, 불발됐다. 이런 디테일이 살아있는 전자랜드의 수비.
경기로 돌아가자. 일찍 걸린 전자랜드 팀 파울로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관희와 김태술의 스틸로 인한 속공 연속 4득점이 터졌다. 이대현의 밀착마크로 인한 김준일의 파울 자유투 2득점이 나왔다. 결국 12-11, 삼성의 역전.
김태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기 전 김태술은 기자에게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미치겠다"고 말했다. 깔끔한 스틸로 득점까지 성공했던 김태술은 임동섭의 3점슛을 연결하는 어시스트, 1.5초를 남기고 직접 3점포까지 성공시켰다. 1쿼터에만 7득점, 1어시스트, 1스틸. 전자랜드의 앞선 압박을 효율적으로 대처한 김태술 덕분에 1쿼터 22-17로 삼성이 기선을 제압했다.
2쿼터=김지완의 반격, 아이스 디펜스
전자랜드의 공격루트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제임스 켈리가 짧게 골밑 돌파 후 강상재에게 연결, 3점슛이 성공된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켈리와 팀동료와의 화학적 결합이 돼 가고 있다는 단적 장면.
하지만, 삼성은 라틀리프가 골밑에서 꾸역꾸역 득점을 했다. 전자랜드의 세밀한 약점 중 하나는 강상재와 정효근이 더블팀 수비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켈리와 강상재 정효근을 함께 쓰면 상대 골밑에 대한 대응력이 그만큼 취약해진다. 5분18초를 남기고 28-26, 여전한 삼성의 리드. 정영삼의 속공 실패를 베테랑 주희정이 3점슛으로 연결하면서, 31-26, 5점 차로 다시 삼성이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이때 2차전 히어로 김지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스크린을 받은 뒤 3점슛을 성공시켰다. 이 슛은 분위기 반전에 큰 의미가 있었다. 곧바로 2득점을 성공시키면서, 삼성의 외곽 수비 약점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켈리까지 득점에 가세하면서 다시 35-33, 전자랜드의 리드.
이때 전자랜드는 또 다시 인상적 디펜스 전술을 가지고 나왔다. 임동섭과 라틀리프의 2대2 공격 당시, 임동섭을 코너로 몰았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빅터가 임동섭에게 더블팀을 들어간 뒤 패스가 연결되자, 곧바로 라틀리프를 마크했다.
불완전했지만, 아이스 디펜스(Ice defense)였다. 상대 강력한 득점원이 있을 때 코너로 몰면서 견제하는 2대2 수비 방식.(코너로 몰면 중앙을 돌하는 것보다 패스 각도가 180도에서 90도로 줄어들면서 공격 옵션 자체가 줄어든다) 전자랜드가 시즌 중 양동근을 마크하기 위해 주로 사용했던 수비 방법이었다.
이때부터 힘 대결이 시작됐다. 1라운드는 크레익과 켈리였다. 크레익이 득점을 하면, 켈리가 응수했다. 6.8초를 남기고 켈리가 버저비터 팁인을 성공시켰다. 그러자 곧바로 크레익이 골밑 돌파 후 바스켓 카운트를 얻어냈다. 44-41, 3점 차 삼성의 리드. 승패의 균형은 깨지지 않았다.
3쿼터=켈리, 크레익 딜레마 일으키다
전자랜드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경기 전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외곽 압박이 삼성 높이를 제어하는 가장 큰 수비 전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다 할 압박이 없었다.
마치, 후반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전략적 움직임. 드디어 봉인이 풀렸다.
3쿼터 중반, 드디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삼성의 턴오버가 나왔다. 전자랜드는 켈리의 속공, 김지완의 스틸에 의한 득점, 켈리의 3점포까지 폭풍우처럼 몰아쳤다. 46-50으로 뒤지던 전자랜드는 3쿼터 7분여부터 4분 동안 대거 14득점을 올렸다. 59-50으로 스코어가 벌어졌다. 심판의 오심도 있었다. 속공 과정에서 켈리는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심판은 뒤따라 오던 크레익의 파울을 불었다. '다행히' 속공 파울을 선언하지 않고, 일반 파울을 불었다.
삼성은 크레익이 너무 아쉬웠다. 단순한 1대1 골밑돌파를 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삼성이 시즌 막판 좋지 않았을 때 나왔던 '크레익 딜레마'가 재현됐다. 득점을 해줘야 할 문태영 역시 부정확한 3점포로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농구 BQ'가 약한 삼성의 고질적 약점이 드러났다. 반면 전자랜드는 켈리와 김지완의 연속 3점포로 더욱 점수를 벌렸다. 3쿼터만 26-10, 전자랜드의 압도적 우세. 기본적으로 켈리와 크레익의 차이점. 전자랜드 조직적 농구와 삼성 '따로국밥' 농구의 차이이기도 했다.
4쿼터=삼성 악성실책, 오락가락 판정기준
67-54, 13점 차 전자랜드의 리드. 기세는 완전히 전자랜드가 잡았다. 하지만 스코어만 놓고 보면, 삼성은 충분히 추격전을 벌일 수 있었다.
여기에서 강팀의 면모가 드러난다. 끈질긴 추격으로 빠르게 한 자릿수로 득점대를 좁힌 뒤 상대를 압박하느냐, 그렇지 않고 자멸하느냐의 차이다.
삼성은 후자였다. 강상재와 정영삼의 득점이 터졌다. 반면 삼성은 계속적 턴오버가 유발됐다. 속공 상황에서 라틀리프가 천기범에게 패스, 3점슛이 실패하는 이해하지 못한 슛 셀렉션 장면도 나왔다.
사실 4쿼터 초반 전자랜드의 공격 작업도 원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의 승부처 실책은 인천 삼산실내체육관 전자랜드 홈팬의 데시벨만 높혀 줬다. 6분12초를 남기고 김지완의 앨리웁 패스에 의한 켈리의 덩크가 터졌다. 데시벨은 최고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때 전자랜드는 방심했다. 정규리그 4쿼터 뒷심 부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슛이 빗나갔고, 삼성은 라틀리프의 골밑 득점으로 꾸역꾸역 따라오기 시작했다. 유도훈 감독이 작전타임으로 한 차례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경기종료 3분34초를 남기고 75-66, 9점 차까지 따라왔다.
이때 또 다시 석연치 않은 천기범의 파울이 불렸다. 정영삼과 약간의 접촉이 있었고, 자유투 2개가 주어졌다. 정영삼이 자유투 1개만 성공시킨 뒤, 곧바로 전자랜드의 스틸(삼성의 실책) 이후 득점. 강상재의 3점포가 이어졌다.
82-69, 다시 13점 차. 하지만, 삼성은 문태영, 라틀리프의 득점으로 또 다시 78-82까지 추격했다. 삼성은 천기범이 회심의 3점슛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
여기서 하나 짚어볼 필요가 있다. 판정이 여전히 문제였다. 일단 1쿼터로 돌아가 보자. 팀 파울에 양팀 모두 일찍 걸렸다. 접촉에 민감했다. 하지만, 2, 3쿼터 어느 정도 몸싸움을 허용하는 모습. 그리고 4쿼터 다시 판정이 타이트해졌다.
큰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정 기준이다. 일관되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은 적응하고, 예측을 한다. 경기력이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오락가락 판정 기준 때문에 승부처에서 파울 콜 하나로 희비가 엇갈렸다.
애매한 판정도 많았다. 3쿼터 3분32초 켈리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은 심판의 실수라고 치자. 1분 15초를 남기고 천기범의 정병국에 대한 파울, 50.8초를 남기고 문태영의 골밑돌파에 대해 파울이 불리지 않은 것, 그리고 34.8초를 남기고 켈리의 돌파 때 문태영의 수비자 파울이 공격자 파울로 둔갑했다. 이런 판정기준으로는 남은 플레이오프가 걱정된다. 인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