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농구 합숙 폐지와 지역 연고제 강화. 정말 내실 있는 정책이 되려면?
한국농구연맹(KBL)이 큰 결단을 내렸다. 지난 9일 열린 이사회에서 구단 합숙소 운영을 폐지한 것이다. 프로농구는 그동안 홈 체육관 근처나 구단 전용 체육관에서 시즌 내내 합숙하며 경기를 치렀다. 이 때문에 아마추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KBL은 이번 결정을 내리며 궁극적 목표는 지역 연고지 정착에 있다고 설명했다. 각 구단 모든 인력이 홈 도시에서 생활하고 훈련해야 프로야구처럼 진정한 프로의 구색을 갖출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례로, 부산 kt 소닉붐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전용 체육관에서 생활하다가 경기가 있을 때만 부산에 내려갔다. 부산 팀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운 면이 많았다. KBL의 이번 결정은 장기적 관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몇몇 구단들의 이해 관계가 갈리는 가운데서도, 10개 구단 단장들은 모두 이 취지에 공감해 합숙 폐지 결정에 동참했다. 창원 LG 세이커스의 경우, 지난 2014년 경기도 이천에 야구단과 함께 챔피언스파크를 개장했다. 최고 시설의 농구 코트 2면과 선수단 숙소를 만들었다. 이 시설을 활용하지 못하기에 아쉬울 수 있지만,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울 수는 없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해도 앞으로 세밀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일단 KBL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비하라는 차원에서 유예 기간을 뒀다. 2017~2018 시즌까지 합숙소를 운영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합숙소를 폐지한다고 해도, 당장 구단의 모든 게 연고 도시에 곧바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면 무리다. 연습할 곳이 없다. 프로 선수라면 매일 코트에서 슛을 던지고 훈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각 지역에 프로 선수들이 훈련할 만한 체육 시설이 전무하다. 지역 주민들이 배드민턴을 치다가 자리를 비우는 다용도 체육관에서 프로 선수들이 훈련하는 건 무리다. 그렇다면 해당 지역에 연습 체육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구단이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모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연고 지역 지자체가 크게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도 아니다. 인기가 많지 않은 프로농구팀 연습 체육관을 선뜻 지어줄 곳이 있을까. 결국 지금 쓰는 연습 체육관을 활용해야 한다. 출-퇴근 형식으로 말이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 선수들은 울산에 머물며 훈련을 위해 경기도 수원을 찾으라는 얘긴데, 이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결국, 선수들은 합숙소에서 잠만 자지 않을 뿐이다. 체육관 근처에 집을 얻어 거주할 수밖에 없다. 지역 연고제 정착 의도와는 맞지 않는 경우다.
그래서 KBL과 10개 구단은 5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단이 해당 연고 도시에 정착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될 기간이 3년이 될 지, 5년 넘는 시간이 걸릴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5년 안에 무조건 정착하라는 규정을 둔 것도 아니다. 이 사안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KBL의 역할이 중요하다. 각 구단들이 지역 연고 정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꾸준히 관찰해야 하고, 구단들이 지자체와 협력할 수 있게 중간 다리 역할도 해줘야 한다.
당장의 혼란도 막아야 한다. 이번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설문을 한 결과, 의외로 합숙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려면 돈이 든다. 하지만 합숙을 하면 운동만 열심히 하면 모든 걸 관리받을 수 있기에 차라리 합숙이 마음 편하다.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 선수라면 이 문제 해결이 수월하겠지만, 갓 프로 무대에 뛰어든 젊은 선수들이나 2군 선수들은 당장 생계 유지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오죽하면 "앞으로는 집값이 수도권보다 싼 전주 KCC 이지스, 원주 동부 프로미가 선수들에게는 인기 구단이 되겠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올까. 수도권 A 구단의 한 스타 선수는 "합숙소 폐지를 반기는 입장이지만, 어려운 후배들을 생각하면 나서서 환영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의 경우 신인급 선수들은 몇년 간 2군 숙소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이들을 감쌀 수만도 없다. 프로농구 선수가 아닌, 일반 직장인들도 많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회사에 다니기 위해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이 논리로 접근하면 프로 선수라고 무조건적인 혜택을 주기 어렵다.
KBL이 야심차게 발표한 선수연고제도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KBL은 각 구단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농구 클럽 등록 선수들 가운데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14세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로 매년 최대 2명까지 연고 계약을 맺고 육성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드래프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해당 구단에 입단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그런데 프로팀이 없는 광주 지역 농구를 잘하는 초등학생 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그 선수에 대한 소문이 나면, 구단 유소년 농구팀이 형식적 등록만 시키면 향후 고교 졸업 후 팀에 데려올 수 있다는 뜻이다. 온갖 편법이 난무할 수 있다.
연고지 학교와 구단의 밀착 운영도 추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10개 구단 중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지역 분배를 어떻게 할 지도 고민이다. 농구부 보유 학교가 많지 않은 연고지역 구단은 선수 보강을 위해서라도 연고 이전을 추진할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현장정보 끝판왕 '마감직전 토토', 웹 서비스 확대출시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