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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을 훌쩍 지났다. '혹시나'는 '역시나'로 바뀌었다.
결코 우승을 노린다면, 할 수 없는 행보들이었다. 시즌 전 예상 역시 다르지 않았다. 냉정하게 보면 모비스는 '6강은 들어갈 수 있지만, 4강은 불투명하다. 다크호스는 될 수 있다' 정도의 평가였다. 양동근과 함지훈이 있지만, 전력 누출이 심했다. 게다가 외국인 선수 선발 역시 10, 11순위였다. 고심 끝에 리오 라이온스와 커스버트 빅터를 뽑았지만,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센터진을 갖추지 못했다.
뚜껑이 열렸다. 또 다시 1위다. 리빌딩 행보를 보인 팀이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비밀은 뭘까.
모비스의 코칭스태프나 프런트들을 보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NBA 샌안토니오와 같은 시스템을 추구한다"고 한다.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2000년 이후 NBA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팀이다. 국내 팬 사이에서는 '산왕'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최강팀 이름이다. 그만큼 절대적으로 강하다는 의미로, 발음이 비슷해 붙여진 별칭이다.
2000년 이후 네 차례의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최고의 명장 그렉 포포비치 감독을 중심으로 팀 던컨,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등 삼각편대가 샌안토니오의 역사를 만들었다. 올 시즌에는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는 크와이 레너드와 포틀랜드에서 FA로 풀린 라마커스 알드리지를 영입, 2년 만의 우승을 노리고 있다.
놀라운 것은 1997~1998시즌 이후 승률이 6할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특정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샌안토니오의 독특한 시스템과 로테이션으로 항상 우승권 전력을 유지하는 팀이다. 이런 시스템은 리그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포비치 감독 밑에서 어시스턴스 코치로 일했던 마이크 부덴홀저 애틀랜타 감독은 지난 시즌 샌안토니오 시스템을 이식, 애틀랜타의 돌풍을 일으켰다.
리그 트렌드를 바꿔놨다. 애틀랜타 뿐만 아니라 전통의 명문이자 빅 마켓인 보스턴 셀틱스 역시 버틀러대학의 명장 브래드 스티븐슨 감독을 선임, 주전과 백업의 강력한 로테이션으로 성공적인 리빌딩 과정을 거치고 있다. 즉, 뛰어난 스타 한 명은 일시적인 팀 성적을 보장하지만, 시스템에 의한 팀 체질 개선은 좀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성적을 낼 수 있다는 논리다.
리그의 수준이나 상황은 다르지만, 모비스 역시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비시즌 동안 철저한 준비를 한다. 선수들은 체력과 공수의 기본기를 익힌다. 특히 옆으로 걷는 강한 수비 스텝 훈련을 하는데, 신인 선수들은 항상 허벅지가 찢어지는 관문을 겪는다. 그 속에서 어떤 변수에도 공백을 최소화하는 팀의 확고한 기틀이 만들어진다. 유 감독은 "기본적으로 양동근과 함지훈이 있는 것이 큰 자산이다. 기량 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매우 모범적이다. 농구 외에는 다른 짓은 하지 않으니까"라고 했다.
그는 "두 선수가 있기 때문에 모비스는 안정적인 팀 컬러를 갖출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덧붙일 부분은 나머지 선수들의 역할이다.
지난 시즌 모비스의 핵심 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은 시즌 전 퇴출됐다. 모비스 측에 따르면 '연봉에 불만을 품고 팀 분위기를 해쳤다'는 것이 퇴출의 이유. 사실 전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핵심 외국인 선수를 시즌 직전 자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교체를 단행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모비스 전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중거리슛을 장착한 라틀리프가 공백을 최소화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대체 외국인 선수 아이라 클라크가 펄펄 날았다.
올 시즌에도 모비스는 송창용과 김종근이 부상 중이다. 그러나 이 공백을 전준범과 김수찬 김영현 등이 잘 메워주고 있다. 양동근 함지훈을 중심으로 모비스의 확고한 틀과 함께 비시즌 철저한 준비로 준비된 백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샌안토니오와 보스턴같은 경우는 실전의 디테일에 강하다. 즉, 상대에 따른 맞춤형 수비와 공격을 유효적절하게 한다. 풍부한 경험과 함께 철저한 준비, 그리고 유능한 코칭스태프가 결합해야 하는 부분이다.
모비스 역시 실전의 디테일에 매우 강하다. 상대의 반응을 빠른 시간 안에 캐치, 유효적절한 공수 조직력으로 빈 틈을 파고든다. 이 부분은 객관적 전력의 한계를 실전에서 넘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
유 감독은 "내가 좀 독하다. 연습 때 반복했던 수비 스텝이 한발짝 정도가 틀릴 경우, 예외없이 고칠 때까지 반복시킨다"고 했다. 단지, 기계적인 훈련이 아닌 실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수 기본기에 대한 연습을 정규리그에서도 한다는 의미다. 이런 확고한 틀은 장기 레이스에서 많은 이점을 가져다 준다.
강팀의 기본 조건은 약팀을 예외없이 잡는 것이다. 그래야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 있다. 모비스는 7위 이하 KT, 전자랜드, SK, LG와의 상대전적에서 절대 우위다. 무려 12승1패다. 그만큼 경기력 자체가 안정적이라는 반증이다. 확실히 샌안토니오와 닮아있는 모비스는 그래서 강하다. 예상 이상의 정규리그 1위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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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불만족 인터뷰'가 화제에 올랐다. 연전 연승을 하지만 경기내용이 불만족스러웠던 유 감독이다.
그는 당시 '팀은 연승을 하는데 감독님은 만족을 못하신다. 그래서 농구 팬은 엄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유 감독은 웃으면서 "경기내용이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지나치는 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적할 부분은 지적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며 "그래도 불만족스러운 인터뷰는 자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매우 냉철하다. 상황판단 자체가 매우 정확한 편이다. 모비스가 우승 전력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감없이 말한다. 2006~2007시즌 모비스는 탄탄한 전력을 구축했다. 크리스 윌리엄스가 있었고, 양동근은 급성장하고 있었다. 당시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당시 개막전부터 2연패를 했다. 전력의 핵심인 크리스 윌리엄스가 부상으로 2경기 결장을 했다. 하지만, 유 감독은 "핸디 2개를 주고 생각하면 된다. 우승이 목표인 것은 변함없다"고 자신있게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2년은 '엄살'의 연속이었다. 지난 시즌에도 "우리도 우승 전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어이 3연패를 달성했다. 올 시즌에는 "아예 우승은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여기에는 강력한 요인 하나가 있다. 모비스의 경기력은 꾸준하지만, 결과는 상대적이다. 상대팀이 강하면 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쟁팀 스스로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 모비스와 우승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던 LG와 동부, 오리온, SK는 팀 전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LG는 끝내 데이본 제퍼슨을 제어하는데 실패했다. 오리온은 트로이 길렌워터의 기복 때문에 6강전부터 시작, LG에게 패했다. SK는 애런 헤인즈의 부상으로 전자랜드 돌풍의 희생양이 됐다.
올 시즌 역시 마찬가지다. 선두를 질주하던 오리온은 헤인즈의 부상으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오세근까지 돌아오며 선두 탈환은 시간 문제인 것 같았던 호화멤버 KGC 역시 팀 조직력이 무너지면서 기복이 심한 경기력이다. 최근 찰스 로드는 가족 교통사고를 당했고, 마리오 리틀 역시 팀에 녹아든 플레이를 펼치지 못한다. 때문에 유 감독은 "운이 좋은 측면이 분명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비스도 위기는 있었다. 1순위 외국인 선수 리오 라이온스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고, 주전과 백업을 오가던 송창용 김종근 등도 부상으로 이탈했다. 확실한 차이점은 '위기'가 닥쳤을 때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명백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모비스의 선두질주는 리빌딩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올 시즌 리빌딩에 초점을 맞추고 매우 공격적인 패턴을 준비했다. 전준범 송창용 배수용 김종근 등에 초점을 맞춘 전술이다. 그동안 모비스는 플렉스 오펜스(1970년대 고안된 공격전술로 여러 변형이 있다. 크로스 & 다운 스크린을 중심으로 미스매치를 만드는데 초점을 두며, 1대1 대인방어를 공략하는데 효과적이다. 상대 수비가 적응하기 쉽다는 단점도 있다)를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많은 변화를 가했다. 유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공격에서 사실 단순한 부분이 있었다"며 "올 시즌 준비한 공격전술을 토대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 시즌은 정말 우승은 하지 못할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우리 전력과 상대 전력을 냉철하게 비교해 보는데, 플레이오프에서 도저히 계산이 서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 그동안 모비스의 저력을 수차례 목격했다. 이번에도 실전을 치러봐야 결론이 날 것 같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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