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불고기 먹으러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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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대회는 그동안 많이 열렸지만, 한 선수의 이름을 대회명으로 딴 대회는 처음. 한국 여자농구 역사에 있어 '박신자'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설명이 안된다는 의미다. 41년생 74세로 60년대 한국 여자농구를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다. 67년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열린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세계 2위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두는데 선봉장 역할을 했다. 2위였지만 대회 MVP는 박신자의 차지였다. 숙명여중 재학 시절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로 인정받은 박신자는 67년 세계선수권 MVP 뿐 아니라 65년 아시아농구선수권 우승, 67년 도쿄 유니버시아드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여기에 지난 99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세계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한국 여자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가 열리는데, 그 현장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거주중인 미국 뉴욕 인근에서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한국 속초까지 찾아왔다. 성인, U-19 국가대표팀 후배들이 도열해 하이파이브를 하며 박 원로를 환영했고, 박 원로는 대회 개막식에서 축하를 했다. 또, 신선우 WKBL 총재로부터 자신을 꼭 빼닮은 피규어를 선물받고 개막전 시투까지 했다.
박 원로는 "사실 60년대 우리가 농구를 할 때는 선수들끼리 하이파이브 하고, 멋지게 입장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긴장해서 코트에 들어가 코치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뛰는 시대였다. 은퇴 후 TV로 경기를 보며 '나도 저런 입장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근사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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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로는 67년 체코 대회 MVP 수상 비화도 들려줬다. 박 원로는 "당시 체코에 북한 영사관은 있어도 우리 영사관은 없었다. 대회 조직 측에서 경기를 마쳤으면 48시간 내에 빨리 체코를 떠나라고 하더라.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바로 독일로 넘어갔고, 비행기를 탈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거기서 내가 MVP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계 선수들과 겨뤄 제일 높은 자리에 섰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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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자농구의 인기가 많이 시들해졌지만, 당시 여자농구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성원을 받았다고 한다. 체코 대회를 마친 후 김포공항에서부터 당시 소속팀이던 상업은행 본사 건물까지 해병대 차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한 것은 기본이다. 61년에는 실업 상업은행 소속으로 일본 원정경기를 떠나 현지 팀들을 연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이 들썩거렸다고 한다. 박 원로는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45년 해방이 됐고, 내가 53년 농구를 시작했다. 무슨 종목이든 일본을 이겼다는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의 한이 풀릴 시기였다. 그 때 청와대에도 가고 했다. 선수들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불고기였는데, 청와대 가서 불고기를 먹었다"며 흐뭇하게 당시를 떠올렸다.
박 원로는 마지막으로 제2의 박신자를 찾겠다는 이번 대회의 취지에 대해 "제2의 박신자보다 제1의 누군가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밖에 해줄게 없다. 나는 누구보다 많은 연습을 했다. 동료들이 300개 슛을 쏘면 301개 슛을 던지고 연습을 마쳤다. 타고난 자질보다 중요한 건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속초=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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