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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집으로 돌아간다.(I'm coming home)'
우여곡절이 있다. 그리고 그의 극적인 컴백에 숨어있는 노림수가 있다. 명분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냉정한 프로무대에서 '명분'만으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순 없다.
그는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교를 졸업한 직후 2003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고향팀 클리블랜드에 지명됐다. 당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초고교급 선수였던 그를 놓고 덴버 너게츠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노골적인 탱킹(의도적인 최하위 전락)을 할 정도였다. 결국 클리블랜드가 행운을 잡았다.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르브론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심했다. 효율적인 조력자를 데려오지 못했다. 선수를 보는 클리블랜드의 눈이 부족했다. 스몰마켓의 한계도 있었다.
결국 르브론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나의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가져간다'는 말을 남기고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했다. 당시 최고의 슈터였던 드웨인 웨이드, 최고의 파워포워드 크리스 보시가 르브론과 함께 했다.
이 과정에서 르브론에 대한 비판은 심해졌다. 그는 이적 결정을 전국방송을 통한 '더 디시전(The dicision)'이라는 쇼를 통해 발표했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모든 농구팬과 주지사까지 나서서 르브론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그가 이적팀을 선택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굳이 디시전 쇼를 통해 고향팬의 심기를 긁을 필요가 있냐'는 거센 비판이 일었다. 또 하나는 '빅3'의 방식이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경우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의 벽을 끝내 뚫고 자신의 왕조를 개척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슈터와 파워포워드가 합체한 '빅3'에 대해서 '르브론이 너무 쉽게 우승하려 한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그는 마이애미와 6년 계약을 했다. 4년 이후 남은 기간 연봉을 포기하고 FA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옵트 아웃(Opt-out)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결국 그는 마이애미와 4년간의 계약이 끝난 올해 옵트 아웃으로 FA를 선언했다. 그는 지난 시즌 연봉이 1750만달러(약 180억원)였다. 13일(한국시각) 발표된 그와 클리블랜드의 계약조건은 일단 2년간 4210만달러(약 430억원)이다. 2년 후 다시 계약조건을 진행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는 '4년 전 고향의 중요성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고 기고문에서 밝혔다. 그런 명분이 클리블랜드행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맞다.
하지만 마이애미가 시즌을 치를수록 우승확률이 떨어져 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드웨인 웨이드의 부상으로 인한 노쇠화가 가장 큰 이유다. 웨이드와 보시는 르브론과 함께 옵트 아웃 옵션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들의 경우에는 르브론에게 더 많은 연봉을 주기 위해 자신의 연봉을 덜어내려는 시도였다. 마이애미의 상징인 웨이드는 끝까지 팀 잔류에 대해 르브론을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노쇠화되는 마이애미와 달리 클리블랜드는 리빌딩의 종결점에 있다. 올스타급 포인트가드 카이리 어빙이 팀에 잔류했다. 디온 웨이터스, 트리스탄 톰슨, 안드레 바레장 등 유능한 롤 플레이어들도 즐비하다. 때문에 르브론이 가세할 경우 클리블랜드는 단숨에 동부의 최강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결국 르브론은 집으로 돌아갔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았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