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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희(34·우리은행)가 허윤자(35·하나외환)의 팔에 맞고 코트에 쓰러졌다. 고의성은 없었다. 턱 부근을 맞은 임영희는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일어섰다. 그리고 기계 처럼 다시 코트를 뛰어다녔다.
임영희는 코트에서 표정의 변화가 없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티를 안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힘들다' '좋다' '아프다' 이런 감정을 코트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즌의 마지막 6라운드 쯤 오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지친다고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부상의 위험도 많다.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임영희가 내뱉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감독님은 티를 내는 걸 싫어한다. 우리 선수들이 코트에서 체력적으로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면 그 보다 더한 훈련을 해야 한다."
임영희는 강영숙의 합류를 무척 반겼다. 강영숙은 신한은행에서 수많은 우승을 경험해본 베테랑 센터다. 2010~2011시즌 정규리그 MVP까지 뽑혀 최고의 자리에도 올라봤다.
임영희는 "영숙이가 현재 게임 체력이 좀 떨어져 있지만 챔피언결정전에 가면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 보다 한 살 어린 영숙이 가 와서 무척 든든하다. 영숙이가 코트 안팎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임영희는 2009년 우리은행에 합류한 후 바닥으로 떨어진 우리은행 농구의 '흑역사'를 경험한 장본인이다. 팀의 고참 선수로 참담한 심정으로 매 시즌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친정팀 신세계(현 하나외환)에선 평균 득점 한 자릿수를 넘기지 못한 그저그런 선수가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고부터 달라졌다. 요즘은 매 경기 평균 14득점씩을 넣어주고 있다. 그는 현재 국내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포워드가 됐다.
그는 이런 변화를 자신감에서 찾았다. "우리는 자신감이 좋아졌다. 이제 경기력이 조금 떨어져도 상대와 시소경기를 해도 항상 질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막판에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이 표정으로 드러나면 자만심으로 둔갑한다. 하지만 자신감을 숨기면 그게 바로 내공으로 쌓인다. 임영희는 후자에 가깝다.
춘천=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