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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FIBA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르며 16년 만에 농구월드컵(세계선수권) 진출 티켓을 따내는 쾌거를 이룬 남자농구국가대표팀. 완벽한 전술로 아시아의 강호들을 놀라게 한 '만수' 유재학 감독(모비스)과 대학생으로서 중요했던 8강전, 4강전, 3-4위전에서 맹활약한 슈터 김민구(경희대)가 집중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대표팀 내 숨은 주역이 또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이상범 코치(KGC 감독)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유 감독을 보좌하고 선수들을 보살핀 이 감독의 헌신이 빛났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본인은 "나는 코치라 크게 한 일이 없다"며 쑥쓰러워하기만 했다.
이번 대회 후, 유 감독은 지인들에게 "이상범 감독에게 너무 고마웠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농구에서 코치들이 하는 역할은 크게 없어 보인다. 훈련이나 경기 중 작전 지시는 모두 감독의 몫이다. 벤치에 앉아 우두커니 경기를 바라보고만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훈련 중 감독이 의도하는 부분을 중간에서 선수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선수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감독이 아닌 코치의 역할이다.
유 감독이 가장 고마움을 느낀 건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돼줬다는 점. 유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성적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떨어진 농구의 인기를 살려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힘든 순간이 이어질 때 유 감독의 옆을 지킨게 이 감독이었다. 같은 프로 감독으로서 형성할 수 있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 감독은 유 감독이 걱정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었고, 그에 대한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이훈재 감독 역시 열과 성의를 다해 유 감독을 보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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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이 대회 참가를 앞두고 훈련 중이었던 지난달 2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가 열렸다. 한 해 팀 농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 선발. 팀의 수장인 감독이 이 자리에 참석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대표팀 훈련에 집중하겠다"며 드래프트 불참을 선언했다. 모비스를 이끄는 유 감독이 불참하기에 코치 신분으로서 한 배를 타는 것이 맞는 일이긴 했지만 두 사람은 상황이 달랐다. 모비스는 일찌감치 벤슨, 라틀리프와 재계약을 해 대체 자원 체크 차원으로 선수들을 지켜보면 됐다. 하지만 KGC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2명의 선수 모두 새로운 선수를 발굴해야 했다.
이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대표팀 코치로서 역할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하면서도 "솔직히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다행인 건, 2명 모두 원했던 선수들을 선발했다는 것. 드래프트 당일 첩보작전을 방불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에 있는 구단 관계자가 지명 직전 한국에 있는 이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최종 상의를 했다. 이 감독은 "코치들과 이전부터 눈여겨봐왔던 선수들이었다. 만족한다"고 평가했다. 지난 시즌에도 코치들의 추천을 믿고 파틸로를 선발해 재미를 봤던 이 감독이었다.
힘들게 대회를 마친 후 금의환향했다. 그러니 곧바로 소속팀을 정비해야 한다는 숙제가 이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13일 SK와의 연습경기를 지휘했다. 다가오는 프로-아마 최강전 준비로 인해 쉴 시간이 없다. 현재 오세근 양희종이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다 김태술 마저 대표팀 참가로 휴식이 필요해 골치가 아픈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이 감독은 "지금부터 잘 준비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