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국보센터 서장훈 이젠 역사속으로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3-03-19 21:08 | 최종수정 2013-03-20 05:24

19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프로농구 KT와 KCC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 전 '국보센터' 서장훈 선수의 은퇴식이 열렸다. 서장훈의 은퇴식을 위해 경기장을 찾은 가수 싸이와 감격스러운 포옹을 나누고 있는 서장훈.
부산=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3.19



키 2m7의 거구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국보센터' 서장훈(KT·39)이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19일 부산 사직체육관. KT와 KCC의 정규리그 최종전이 끝나자마자 예정된 은퇴식이 열렸다.

경기 시작전 서장훈은 짤막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췄다. "돌이켜보면 매순간이 아쉽고, 생갭다 잘 하지 못했다"며 "후배들에게 전혀 모범선수는 아니었다"며 냉혹하게 자기반성을 했다.

더불어 자신을 싫어했던 '안티팬'들에 대해서도 "경기장은 치열한 승부의 장인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승부욕으로 인해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면 사과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사직체육관에는 가수 싸이가 서장훈의 은퇴경기를 보기 위해 찾았다.

하지만 마지막 코트에 들어선 순간 더이상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늘까지 선수인만큼 평소 하던대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대로 마지막 열정을 불살랐다.

경기 시작 40초 만에 첫 득점을 올리며 통산 1만3200득점을 돌파한 그는 이날 경기에서 33득점, 2리바운드의 생애 마지막 성적표를 남겼다.

이날 승부(KT 84대79 승)는 중요하지 않았다. 올시즌 KT의 최다 홈관중(7269명)이 말해주듯이 서장훈을 떠나보내는 자리가 주인공이었다.

은퇴식 시작과 함께 도열한 후배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등장한 서장훈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가 싶었다. 자신의 활약상이 담긴 추억 영상을 담담하게 지켜보던 서장훈은 팬들에게 작별인사의 말을 하는 순간 결국 눈물을 머금고 말았다. "감사합니다"로 작별인사를 시작한 그는 곧바로 목이 메이고 말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과거를 회고한 그는 부모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순간 펑펑 울고 말았다. 이날 아버지 서기춘씨는 아들의 은퇴를 현장에서 보는 게 너무 힘들다며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서장훈의 눈물은 더욱 굵어졌다.


이어 서장훈은 전창진 감독을 비롯해 그동안 자신과 함께 한 모든 지인과 부산 팬들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서장훈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은 2002년 부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일궜던 부산에서 작별을 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10개월 전 서장훈은 선수생애 최대의 기로에 섰다. 자유계약선수(FA)로 나왔지만 받아주려는 팀이 없었다. "마지막 한 시즌을 더 뛰고 싶다"던 의지도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있었다. KT 구단과 전창진 감독이었다.

사실 나이가 많은 서장훈을 기용하는 게 커다란 모험이라는 주변의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KT는 "한국농구 역사에 남을 거목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예우할 필요가 있다"며 그를 품었다.

서장훈은 프로농구 사상 최초의 연봉 0원으로 화답했다. KT가 제시한 연봉 1억원에 개인돈 1억원을 보태 모교 연세대의 장학기금으로 쾌척한 뒤 무보수 봉사를 자청했다. 이와함께 2012∼2013시즌이 끝나면 깨끗하게 은퇴하겠다며 마음을 비웠다.

이처럼 서장훈은 1998년 프로 데뷔 이후 15년간 6번째로 둥지를 튼 마지막 팀에서 백의종군했다. 하지만 코트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여전히 국보센터의 위용을 경계하는 상대팀의 견제가 심했고, 세월의 무게 역시 그를 곱게 놔두지 않았다.

시즌 초반 눈 주변과 입술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70바늘이나 꿰매는 등 '붕대투혼'의 대명사가 됐다. 시즌 중반에는 허리 부상 등으로 인해 장기간 빠지기도 했다. "한 시즌에 이렇게 많이 다친 적이 없다"던 서장훈은 "정신이 몸을 지배하지 않는가. 체력은 문제가 안된다. 은퇴하면 뛰고 싶어도 못할 텐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남기고 싶다"며 투혼을 꺾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홈에서 벌어진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진짜 '마지막 승부'를 벌였다. 선수 생애 마지막 시즌에서 그가 남긴 성적은 41경기 평균 출전시간 24분, 10.3득점, 3.6리바운드.

KT 선수들의 득점력으로 보면 용병 제스퍼 존슨, 에이스 조성민 다음으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적이었다. 이는 센터로 등록된 국내 선수 가운데 최고이기도 하다.

이제 서장훈은 프로농구 사상 최다 득점(1만3231득점), 최다 리바운드(5235개), 최다 자유투(2223개) 등 '불멸의 기록'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

한편, 올시즌 정규리그를 모두 마친 이날 1위 SK가 동부를 80대72로 무찌르며 한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44승10패·2011∼2012시즌 동부)을 달성했고, 전자랜드를 90대71로 따돌린 모비스는 올시즌 최다연승을 '13'으로 늘렸다. 6강 플레이오프는 오는 22일부터 시작된다.
부산=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