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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보러 오려고만 하면 탈락하더라고. 그래서 아예 첫 경기에 와버렸지."
1939년생, 올해 여든다섯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건강한 모습으로 고교 후배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지켜봤다.
"예전에는 아예 개성고 근처에 집을 구해서 매일 야구부 훈련을 멀리서 지켜보는 낙으로 살았어요. 코로나19 여파 때문에 한 3년간 못보다가, 오랜만에 경기하는 것을 보러 왔습니다. 아니 그동안 전국 대회 경기는 보러 가려고 했었는데, 번번이 1회전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못가서). 오늘은 아예 첫 경기를 보러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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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의 여파가 사라지지 않았던 1950년대. 부산상고 야구부는 공 3개를 가지고 선수단 전부가 훈련을 했다. "선생님이 일주일에 새공을 딱 하나 주셨다. 새 공을 투수들이 일주일동안 쓰고, 일주일 후에 그 공을 타자들이 받아서 배팅 훈련을 했다. 공이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찢어져도 못을 박아 다시 붙이고, 그 위에 또 테이프를 덧씌우고 그렇게 야구를 했다. 전국 대회라도 가는 날에는 전교생이 10원씩 모아서 야구부 회비를 만들어줬다. 그 돈으로 기차 타고 전교생이 서울에 갔다. 그땐 그랬다"며 회상했다. 지금은 고교 야구 선수들도 해외로 전지 훈련을 가고, 레슨장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등 상전벽해 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과 꿈 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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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경기도 매일 본다는 김 전 감독에게, 어느 팀 경기를 가장 유심히 보시냐고 질문했더니 "그래도 (KIA)타이거즈에 가장 오래 있었으니까"라며 변함 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18시즌을 지휘했고, 그중 절반인 9번 우승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면서 "이범호 감독이 잘하고 있더라. KIA 경기는 매일 보고, 오늘 KIA가 지는 것 같다 싶으면 바로 채널을 삼성(라이온즈) 경기로 돌린다"며 웃었다. 타이거즈를 떠난 후에는 삼성에서 구단의 숙원이었던 우승 한을 풀었고, 이후 경기인 최초 구단 사장 자리에 오르는 영광의 시간들을 보냈다.
이제 현장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야구에 대한 관심은 '코끼리 감독'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김응용 전 감독은 개성고 후배들에게 이런 덕담을 남겼다.
"아직은 아마추어니까 승패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즐겁게 추억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야구 선수여도 학생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어요."
목동=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