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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힘든데 즐겁게 힘들어요. 주말에 쉬는 날이 되면 빨리 이천에 가서 운동하고 싶어요."
안찬호는 "한국에 들어와서 1년 유급해서 고3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운동량도 많고, 선후배 관계도 익혀야 했다. 감독님이나 코치님의 스타일도 미국과는 달랐다. 미국은 감독님도 친구처럼 지내고, 기술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는 정도다. 반면 한국은 좀 더 엄격하다. 대신 항상 도와주려는 마음이 크다고 느꼈다"고 했다. 대학교 생활도 쉽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때는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였지만, 대학교에 들어가자 '새내기'로 적응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 아메리칸 마인드로 부딪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배웠고 적응해나갔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청주고 졸업 후 지명 실패, 경희대 졸업 후 지명 실패가 이어졌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앞 길이 막막했다. 안찬호는 "일본 독립리그 테스트도 하고, 한국 프로팀 테스트도 보려고 했는데 당시 딱히 테스트가 없더라. 뭘 해야하지 고민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우연히 KT 위즈 영어 통역 직원 모집 공고가 뜨더라. 우선 이거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야구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었지만, 당장 뭐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지원했다"고 돌아봤다.
안찬호는 "저보다도 부모님이 미련을 못 버리셨다. 통역이나 야구단 업무를 하면서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가족의 꿈을 이루는 게 효도라고 생각해서 포기하기 어려웠다. 1년만 더 해보고 안되면 깔끔하게 포기하자고 생각하며 올해를 맞았다"면서 "야구단 일을 하니까 야구를 더 하고싶더라. 당시 KT 외국인 투수들과 캐치볼을 자주 했는데, 피어밴드와 로치가 피드백을 많이 줬다. 김진욱 감독님도 '선수해도 되겠다'며 칭찬을 해주셨었다. 야구를 다시 하고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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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호 파주 챌린저스 감독은 "정말 성실한 선수라 눈여겨 봤다. 단 하루도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야구를 너무 간절하게 하는 선수라 반드시 기회가 있겠다 싶었는데, 두산에 육성선수로 입단하게 돼 정말 기뻤다"며 칭찬했다.
안찬호는 두산의 육성선수 계약 제안을 받았을 때를 돌이켜보며 '꿈을 이룬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야구를 하러 한국에 왔다. 지명을 받지 못하고, 통역 일을 할 때도 항상 아쉽고 한이 남아있었다. 드디어 그 꿈을 이루니까 어깨에 짐이 사라진 느낌이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었는데, 조금이나마 효자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아직 육성선수 신분이지만, 안찬호는 당당한 두산 베어스의 신입 선수로 지난주부터 이천 구장에서 단체 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대학때 야수였다가 투수로 전향했기 때문에 아직 투수 경험이 부족하다. 코치님들께 정확한 제구나 강심장이 되는 방법, 투수들이 가져야 할 루틴 등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며 부푼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파주 챌린저스 시절, 특별 코치로 온 전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케빈이 알려준 투심이 앞으로 그의 신무기가 될 수 있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주 변화구로 던졌던 안찬호는 "이케빈 형에게 투심을 처음 배웠는데 던져보니 바로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앞으로 더 가다듬어서 자주 활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KT에서 함께했던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두산 입단 소식을 알렸다. 처음에는 다들 믿지 않았다. 피어밴드는 "너무 축하한다. 이제 티비에서 보여줄 일만 남았다. 그동안 네가 이만큼 노력한 게 대단한 것 같다"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고, 로하스는 "뻥치지 말라"며 믿지 않았다고 한다. 안찬호는 "로하스가 처음에는 믿질 않더라. 몇 번이나 되묻더니 너무 축하한다고 이야기해줬다. 피어밴드와 로하스의 와이프들에게서도 축하 메시지가 와서 함께 기뻐했다"면서 "나도 사람인만큼 가끔씩은 언젠가 예전에 KT에서 함께 했던 선수들과 1군에서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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