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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어떻게 지냈나.
굉장히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웃음) 20년 야구를 하며, 어찌됐든 방출 통보를 받은 건 처음이다. 시즌을 마치고, 운동을 하고 있을 시간에 그렇게 하지 못하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이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지 한달 조금 넘었다. 사실 맨 처음에는 1년만 더 KT에서 선수로 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나도 인정을 했다. 서운한 감정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4년간 성적을 봤을 때 내 욕심만 부릴 수는 없었다. 한국시리즈가 끝날 즈음, 이제 그만 둘 때라고 마음 정리를 했다.
-그럼 은퇴를 결정하게 됐는데, 아쉽지 않았나.
20년 야구 인생을 돌이켜보니 수술대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재활군, 잔류군에 가본 적도 없었다. 1군에 없어도 2군에서 꾸준히 공을 던졌다. 올해도 1, 2군 통틀어 70이닝 가까이 소화했다. 해외리그 진출도 잠시 생각해봤다. 하지만 다 욕심인 것 같았다.
-은퇴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해봤는지.
지난 시즌 끝나고 재계약을 못할 줄 알았다.(김사율은 2015 시즌을 앞두고 KT와 3+1년 계약을 맺었다. 마지막 1년은 구단 옵션이었다.) 다행히 김진욱 감독님과 구단이 기회를 주셨다. 올해는 마지막 1년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야구를 했다.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지 않나. 아쉬움이 남고, 1년만 더 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선수들처럼 공식적으로 은퇴를 알릴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현역 생활에 대한 기대는 접고, 지도자로서 새출발 할 수 있는 기회를 생각했다. KT 구단에서도 좋은 길이 있을 수 있다며 기다려보자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특별히 정해지는 게 없었다. 향후 진로가 정해지면 그 때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같이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아닌 선수가 은퇴한다는 얘기를 먼저 꺼내기도 쉽지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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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입단 후 처음 4~5년 구단의 배려로 기회를 많이 받았는데, 내가 못했다. 그래도 롯데 구단에 고마운 건 군 전역 후 3~4년 더 나를 기다려주시더라. 그리고 30세가 넘어 처음 1군 선수가 됐다. 2011, 2012 시즌 롯데 마무리로 뛰며 짧았지만 내 전성기도 있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절대 못잊을 것이다. 제리 로이스터, 양승호 감독님이 많은 기회를 주셨다. 너무 감사하다.
-프로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그건 당연히 2012년 34세이브를 기록하며 고 박동희 선배님의 기록을 경신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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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렵게 잡은 마무리 자리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것. 그게 지금 생각해도 가장 아쉽다. 내가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했다. 2013 시즌 마무리 자리에서 탈락한 후 내리막 길을 걸었다. 단 한 번의 세이브 기회도 얻어보지 못하고 자리를 내주는 것에 대한 허탈감은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그 때의 아픔으로 간절하게 야구를 했기에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인 것 같기도 하다.
-2014년 생애 첫 FA 기회를 얻어 KT 유니폼을 입었다.
KT에서의 4년, 많이 힘들기도 했고 많이 배우기도 했다. 20번이 넘게 1, 2군을 왔다갔다 했다. 하지만 인생의 큰 공부가 됐다. KT에서의 4년이 야구를 잘했던 시절보다 느꼈던 훨씬 소중하게 느껴진다. 1, 2군을 거치며 이런저런 후배 선수들을 보며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 어떻게 선수들을 도와야겠다는 공부가 됐다. 기술적인 것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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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년 동안 국가대표팀도 한 번도 못갔고, 올스타전에도 못나가본 투수다. KBO에서 공식적으로 시상하는 타이틀도 따본 적 없다. 오래 했지만, 이룬 게 없는 선수였다. 그런 나에게 4~5년 전부터 500경기 출전 목표가 생겼다. KT에 와 경기 출전 수가 줄어들어 많이 늦어졌지만 김진욱 감독님과 구단 배려고 어렵게 기록을 달성해 다행이다. 500경기를 채워야 내 가족, 나를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작은 선물이 될 것 같아 악착같이 야구를 했다. 누군가에게는 500경기 출전이 하찮은 기록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KT 구단은 내년 정규 시즌 경기에서 김사율의 은퇴식을 개최하고, 그 때 500경기 시상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제 2의 야구 인생은 어떻게 꿈꾸고 있나.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일단 선수 때는 못봤던 야구 전반의 분야를 보고 싶다. 최근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가 되신 양승호 감독님 밑에서 일을 배울 예정이다. 에이전트 일은 아니고, 선수로서 역량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역할이다. 유소년 야구 재능 기부도 하고, 선수 육성 시스템에 대해 공부할 예정이다.
-선수 시절 동안 리더십이 뛰어나, 좋은 지도자감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롯데 시절, 그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 속에서 1년 동안 주장 역할을 해봤던 게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내가 앞에 막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동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는 있다. 다가오는 후배들에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다 해주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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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건 다 아내 덕이다. 아이가 셋인데, 아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운이 좋은 선수였다. 프로에 입단하니 당대 최고 투수 출신인 양상문, 윤학길 코치님이 계셨다. 선배들도 엄청났다. 성 준, 강상수, 주형광, 염종석, 박석진, 문동환, 손민한, 고 박동희 선배님까지 훌륭한 선수들을 옆에서 보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이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가 KT에 갔을 때도 응원을 아끼지 않아주신 롯데 관계자들과 팬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성원을 보내주신 KT 식구들과 팬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