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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은퇴했는데 수억원 내라고?' 외국인 선수들, 세금 폭탄 맞았다

나유리 기자

기사입력 2018-09-12 19:14 | 최종수정 2018-09-1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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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는 최근까지 KBO리그에서 뛴 미국 국적의 외국인 선수다. 그는 선수 생활을 접고, 가족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구단을 통해 수억 원짜리 세금 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뛸 때도 분명히 원천징수로 세금을 떼고 연봉을 받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 B는 몇 년째 KBO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다. B 역시 몇 달 전 세금 추가 납부 고지서를 받았다. 구단을 찾아가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지만, 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얼마 전부터 그가 구단으로부터 연봉을 분할해 받는 월급 액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추가 납부해야 하는 세금을 국세청에서 떼어가기 때문이다.

현재 각 구단 주요 외국인 선수들은 비상 상황이다. 달라진 세법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몇 년 전에 개정된 시행령이 뒤늦게 적용이 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는 지난 2015년 2월 3일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외국 국적을 가졌더라도 '국내에 머무르는 기간이 1년에 183일 이상 되는' 외국인은 '거주자'로 분류해 한국 국민과 똑같이 매년 5월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야 한다.

그동안은 구단들이 개정 이전의 규정대로 22%의 원천징수를 세금으로 뗀 후 나머지를 연봉으로 지급했다. 외국인 선수들은 국내 선수들과 달리 종합소득세 신고를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개정 이후 예외가 없어졌다. 문제는 KBO리그에서 뛰고있는 외국인 선수 대부분이 고액연봉자라는 사실이다. 리그 최고 연봉을 받는 3년차 KIA 타이거즈 헥터 노에시는 200만달러(약 23억원)고, 웬만큼 선수는 100만달러 이상을 받고 있다.

한국 국민에게 적용되는 세법을 기준으로 하면, 5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자는 종합소득세를 신고해 최대 40%의 세금을 내야 한다. 쉽게 말해 연봉 10억원인 선수가 이전까지 2억원의 세금을 냈다면, 이제는 4억원 가까이 내야한다. 2배가 늘었다.

초기 개정안에서는 원천징수 3%+종합소득신고로 했기 때문에, 1년만 뛰고 소득신고를 하지 않고 본국으로 도망치는 '먹튀' 선수를 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정부는 최근 일부 개정해 원천징수 세율 20%+종합소득신고로 바꿨다. 완벽한 '먹튀'는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세금을 피하거나, 안낼 수는 없다. 법을 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 이후에도 구단도, 선수도 해온대로 규정에 따라 세금을 처리해왔고, 국세청도 그동안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국세청이 프로 스포츠에서 뛰고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소득과 세금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점이 발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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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급 적용이 혼돈을 불러왔다. 국세청은 외국인 선수들에게 시행령이 개정된 2015년도 연봉부터 바뀐 규정대로 세금을 부과했다. 앞에서 예시를 든 경우처럼 2015시즌 이후 KBO리그에서 뛴 적이 있거나, 뛰고 있는 선수들이 세금 폭탄을 맞았다. 국세청은 소속 구단을 통해 세금 고지서를 보냈다. 이미 한국을 떠난 선수들 중 2015시즌 이후 뛰었던 선수들에게도 고지서가 구단을 통해 전달됐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돈을 당장 내기 힘든 선수들은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세금을 내지 못하면 앞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입국 즉시 고액체납자로 처분을 받기 때문에 세금 처리가 우선이다.

세금을 규정대로 처리했다고 생각한 선수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내 선수들 중 고액연봉자들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회계사를 고용해 매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한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은 개인 회계사를 고용하지 않고, 구단 도움으로 세금 처리를 해왔다. 바뀐 세법을 세세히 알기란 쉽지 않다. 만약 연봉 계약을 하기 전에 이런 내용을 알았다면 계약 조건이나 내용 자체가 달라졌을 수 있다. 일부 선수들이 불만을 터트리는 이유다.

이중과세를 방지하는 한미조세협정으로 인해 미국 국적 선수들은 조금 낫다고는 해도, 추가 부담을 해야 하는 입장은 똑같다. 현재 뛰고 있는 미국 선수 중 다수가 내야 하는 금액이 만만치 않아 골치가 아프다. 협정을 맺지 않은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쿠바 출신 선수들은 더 난감한 상황이다.

외국인 선수를 '국내 거주자'로 규정하는 것이 맞는 지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몇몇 구단은 "차라리 원천징수 자체를 26~29%로 올리고 종합소득세 신고 의무를 줄이는 것이 안정적인 세수 확보 측면에서도 낫고, 선수들도 세금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어 좋지 않겠나"라는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제 세금 부담은 고스란히 구단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KBO 이사회에서 내년부터 외국인 선수 신규 계약시 총액 100만달러로 몸값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재계약을 할 경우 보장 금액을 더 높여달라는 요구를 선수측에서 할 수 있다. 40%에 가까운 높은 세율까지 감안해 2년차 이후 몸값이 폭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보장 금액 자체를 더 높여 세금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방법이다.

야구계 한쪽에서는 전체적인 몸값 거품을 빼기 위해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 철폐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현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수준급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는 것 자체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야구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축구 배구 농구쪽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지만, 배구나 농구의 경우 야구만큼 연봉이 높지 않다. 시장 규모 가 작다. 농구는 2주일만 뛰고 돌아가는 임시 대체 선수들도 많다. 재계약 자체가 드문 데다 근본적으로 구단에서 세금을 내주는 계약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당장 계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유다.

'돈 문제'인 세금 관련 이슈는 특정 구단이나 선수 몇몇이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민감한 부분이다. KBO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법 개정 직후 미리 상황을 파악해 구단들에 알려줬다면 지금의 혼돈은 없었을 것이다. 회원사들을 대리해 업무를 보는 공식 기구인 만큼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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