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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인 부진일까, 아니면 명확한 한계점의 노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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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해커의 선발 등판은 NC 다이노스 소속이던 지난해 9월30일 창원 넥센전 이후 277일 만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마지막 등판 때의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올해 KBO리그 복귀전을 치르게 됐다. 그런데 복귀전의 시점이 적절했는 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해커는 지난 6월 25일에 입국했다. 다음 날 바로 라이브 피칭 90개(26일)를 던졌고, 27일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취업 비자를 받은 뒤 29일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30일에는 대구에서 원정 중인 1군 선수단과 합류했다. 그리고 이날 30개의 불펜 피칭을 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 3일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결국 최초 입국 후 8일 만에 바로 선발 등판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해커는 그토록 바라던 KBO리그 컴백에 성공한 입장이라 등판 의욕이 충만한 상황이었다. 넥센도 당장 해커의 등판일을 하루 이틀 미룬다고 해서 선발 로테이션이 심각하게 꼬이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 타이밍 쉬게 하고 등판시키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나 해커가 이날 뒤로 갈수록 급격히 구위가 저하된 점을 볼 때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커 역시도 이날 경기 후 "이닝을 더해 갈수록 피로감이 좀 쌓였다. 전략을 바꿔가면서 던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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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해커는 경기 초반에는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이었다. 해커는 1회초 1사 후 SK 2번 한동민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했다. 복귀전 첫 피안타. 그러나 곧바로 한동민을 견제구로 잡아내며 노련미를 과시했다. 이후 로맥에게 볼넷을 허용했지만, 최 정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2회에도 2사 후 김성현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지만 후속 나주환을 우익수 뜬공 처리하며 점수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3회에 첫 실점을 기록했다. 선두타자 정진기가 기습번트 안타로 살아나간 뒤 도루-희생번트로 1사 3루가 됐다. 여기서 한동민이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날려 1-0을 만들었다. 이때도 해커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곧바로 로맥을 2구 만에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이닝을 마쳤다. 4회초는 삼진 2개를 곁들여 삼자 범퇴로 끝냈다. 여기까지는 매우 이상적인 흐름이었다. 이닝당 투구수도 13개(4이닝 52개)로 적절했다.
그런데 5회부터 제구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선두타자 7번 김성현에 이어 나주환에게도 볼넷을 허용했다. 이례적인 연속 볼넷이다. 이어 1사 1, 2루에서 노수광과 한동민에게 연속 적시타로 순식간에 3점을 내줬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사 2루에서 타석에 나온 로맥은 2점 홈런, 그 뒤에 나온 최 정은 솔로 홈런을 치며 연달아 해커를 두드렸다. 순식간에 6실점 한 해커는 결국 김동준으로 교체됐다.
이날 해커는 투구수 50개를 넘긴 뒤부터 갑자기 무너졌다. 9개월 넘게 혼자서 연습만 해 온 투수들에게 흔히 생길 수 있는 문제다. 아무리 혼자 스케줄을 정해놓고 훈련을 진행했다고 해도 정규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등을 통해 실전용 스태미너를 비축해놓은 투수와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도 속은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실전 감각의 부재도 문제로 보인다. 해커는 그간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지며 훈련을 진행해왔다. 소속팀이 없으니 타자를 세워놓을 수 없었다. 그냥 포수 미트를 향해 던지는 것과 경기 상황에서 타자를 이기기 위해서 던지는 건 차원이 다르다.
투수는 목표점을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자를 이기기 위해 공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해커는 여건상 이 부분을 준비할 수 없었다. 때문에 앞으로의 등판에서도 문제가 수도 있다. 이날 SK전의 1패 보다 어쩌면 이게 더 우려되는 부분이다. 해커 역시도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타자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투구 전략을 세우도록 노력하겠다"고 향후 선전을 다짐했다.
고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