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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기 없는 깨끗한 얼굴에 높게, 질끈 묶은 포니테일, 씩씩함을 한껏 살려주는 붉은색 여자야구 대표팀 유니폼. 배우가 아닌 야구선수 박지아(25)의 첫 인상이었다.
◇7살 소녀 야구를 처음 만나다
-배우와 야구선수,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 병행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야구를 처음 접한 게 언제죠.
고향이 대구인데, 일곱살 때 가족들과 야구를 보러 갔었어요. 외야석에서 놀고 있었는데, 야구공이 제 앞으로 굴러 떨어졌어요.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선수가 친 홈런볼이었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 이후로 야구선수가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머니가 (고인이 되신)이승엽 선수 어머님과 친분이 있으셔서 야구 용품이랑 유니폼도 받아 늘 감사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는데, 하루는 오빠랑 동네에서 야구를 하다가 코에 공을 맞아 흰옷이 빨갛게 피로 젖을만큼 코피를 흘렸어요. 부모님이 충격을 받으셨죠. "이제는 야구하지 마"라고 하시면서 장비를 다 버리셨어요. 제가 워낙 활동적이니까 발레를 배우게 하셨는데 금새 흥미를 잃었죠.(웃음) 몰래 야구하면서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어요.
-운동을 많이 좋아했나봐요.
늘 삼성 경기를 봤고, 운동을 계속 했어요.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거든요.(웃음) 15년 정도 합기도를 했어요. 호신술을 배우려고 했는데, 관장님이 우슈를 가르쳐주시고 태권도, 복싱도 했어요.
-그럼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언제죠.
3~4년 됐어요. 여성들도 야구를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어요. 아카데미나 연습장에 가면 프로 출신 코치님들도 계시고,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저는 욕심이 많아서 처음부터 개인 레슨을 꾸준히 받았고요. 잘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특히 소프트볼 출신 선수들은 기본기가 탄탄해요. 2년간 국가대표에 못들어갔어요. 여자야구연맹에 등록된 선수가 1000명이 넘고, 팀이 50개나 돼요.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해왔던 분들을 이기기 위해서 더 노력했죠. 3년간 하다보니 그동안 벌어놓은 돈, 전세금 모두 쓰고, 지금은 아르바이트하면서 야구 하고 있어요.
-야구를 반대하셨던 부모님의 걱정은 이제 줄었나요.
많이 걱정하시는 것을 아니까, 고향에 가더라도 힘든 내색은 안해요. "즐겁다"고 하죠. 근데 진짜 즐거워요.(웃음) 지금은 국가대표가 됐으니까 뿌듯해하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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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배우를 왜 하게 됐는지 더 궁금하네요.
우슈와 태권도 청소년대표로 뛰었어요. 그러다가 정두홍 감독님이 계시는 서울액션스쿨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어요. 거기서 22살때부터 24살까지 2년간 배우면서, 액션배우로 영화와 광고에 여러 편 출연했어요. 그러다 정식으로 연기를 배워보자는 제안을 받고 단역으로 배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야구가 더 좋아요.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노력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프로 선수들처럼 오전 운동 후 점심먹고 운동하고, 저녁에 야간 운동 또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반복했어요. 주 포지션은 투수인데, 사실 여자야구는 다 잘해야 돼요. 작년에는 타율 6할을 쳤는데, 올해는 방망이 연습보다 투구에 집중하고 있어요. 최고 구속은 100㎞까지 나왔고, 평균 80~90㎞을 왔다갔다 해요. 근데 특히 여자야구에서는 구속보다 제구가 중요하더라구요. 저도 구속을 올리고 싶어서 근육량을 7㎏까지 늘려봤지만, 제구가 안되니까 필요가 없었어요. 투심 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도 대부분 던질 줄 알아요.
-대표팀에 발탁된 이후에는 달라진 게 있나요.
25일에 이천에서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가 열려요. 대회가 앞이라 무리하지 않고, 아침에 수영이나 웨이트를 가볍게 하고 튜빙으로 어깨 강화 훈련을 하고 있어요. 공을 많이 던지니까 어깨가 많이 늘어났거든요.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가요.
평일에는 다들 직장이 있으니 퇴근하고 연습장 가는 분들도 있고, 주말에는 전용 구장이 없어 비는 구장을 사비로 빌려서 해요. 코치님들도 저희가 직접 초빙해서 배우고요. 아직 환경이 많이 열악하죠. 정말 야구를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저희팀 선수들 모두 남자친구가 아무도 없어요.(웃음) 평일에도, 주말에도 야구장에서 사니까요. 훈련 끝나면 저희끼리 밥먹고 집에 가서 기절하듯 자죠. 남자친구를 만들 시간이 없어요.(웃음)
-사실 아직까지 여건상, 여자야구선수를 주업으로 삼기는 힘들지 않나요.
대표팀에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 온 분들이 많아요. 물론 모두 다 직장이 따로 있어요. 체육선생님, 군인, 경찰 등 다양해요. 언니들을 보면서 늘 저도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부업으로 배우 활동을 하는 셈이죠.(웃음) 사실 재작년에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야구를 하느라 안 했어요. 당시 소속사에서도 쫓겨났고요. 그만큼 배우 박지아보다 야구선수 박지아으로 불리는 게 더 좋아요.
-이대은(경찰야구단)과 친분이 있다는데.
제가 유일하게 아는 프로 선수입니다. 다른 친구들과 밥을 먹을 기회가 있어서 그때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오빠한테 많이 알려달라고 하는데, 잘 안 알려줘요. 자신의 비법이라고 하면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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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인 질문인데, 야구를 왜 하는 거죠.
야구를 하면 행복해요. 물론 개선될 점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고,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도 있어요. 어린 친구들이 제게 연락을 많이 해요. 여자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사실은 저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요. 미래가 없어 슬프기도 해요. 어린 친구들에게 명확한 답을 해줄 수 없어 속상하기도 하고요. 일단 지금 학생이니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죠. 누구도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지는 안잖아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언젠가는 우리 여자야구도 일본처럼 실업팀이 생기고 그러면 좋겠어요. 올해가 한국여자야구가 생긴지 10주년인데, 그렇게 보면 어린 소녀인거잖아요. 발전할 기회가 많은거죠.
-여자야구의 매력이 뭐죠.
지인들이나 팬들이 와서 보고 여자야구도 재미있다고 해요. 다들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에 익숙해져 있어 "여자들이 야구를 얼마나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오는데, 막상 보면 재미있는 거죠.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이 멋있다고 칭찬해주시면 정말 뿌듯해요.
-배우이다 보니 오해를 받을 때가 있을 것 같은데.
만약 정말 야구로 인지도를 쌓으려고 했다면, 영화 감독님이 계시는 팀이나 연예인팀에 들어갔겠죠. 저는 그게 아니라 정말 여자야구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야구가 정말 좋아 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오해는 풀린다고 생각해요.
-야구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없나요.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죠. 당연히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도 알아요. "여자가 무슨 야구냐? 마운드에서 내려가라"는 이야기도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그만 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게 미스터리예요. 힘들다고 하면서도 계속 하고 싶어요.
-야구선수 박지아의 꿈이 있다면.
일단은 앞만 보고 달려야죠. 이번 대회가 끝나면 내년 2월에 열리는 세계대회 대표팀 선발전을 준비해야해요. 배우 활동도 열심히 해야죠. 알바하는 것도 한계가 점점 느껴져서, 일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개인적으로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LG에서 여자야구 후원을 많이 해주세요. 전국 대회, 국제 대회도 개최해주면서 저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요. 여자야구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드시 하고 싶었어요.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