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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데 어디로 가겠는가.'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만난 러프는 덩치(키 1m92)와 비슷하게 조용한 말투와 겸손한 행동거지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올시즌을 마치고 은퇴하는 이승엽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이곳에 와서 친해지고 있다. 서로 도움이 될 것이다"며 자존심을 세웠던 러프는 시즌이 시작된 뒤 김한수 감독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시즌 개막후 4월까지 한 달간 그는 타율 1할5푼, 2홈런, 5타점에 그쳤다. 삼성은 4월까지 26경기에서 4승20패2무를 기록했다. 창단 36년간 이처럼 수모를 당한 적이 없다. 하지만 5월 들어 반등세가 시작됐다. 삼성은 5월 한 달간 11승14패를 기록했다. 일취월장이 맞는 표현이다. 투타 밸런스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함부로 대할 수만은 없는 팀임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마침내 KBO리그에 적응한 모습이다. 지난 5월 20일부터 따지면 10경기에서 타율 3할6푼8리(38타수 14안타), 4홈런, 16타점을 뽑아냈다. 4번타자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유인구 대처능력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지만, 실투를 놓치지 않는 노련함은 4월과는 다르다. 이날 롯데전에서도 러프는 7회말 1사 2루서 좌완 이명우의 140㎞ 한복판 직구를 통타해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아치를 그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시즌 초 퇴출이 거론되기도 했던 러프에 대해 삼성 구단은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부상만 없다면 중심타자로서 손색없는 활약을 펼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대구=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