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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넥센 허정협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

나유리 기자

기사입력 2017-04-12 00:19 | 최종수정 2017-04-12 00:31


KT 위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2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4회말 2사 1루 넥센 허정협이 좌월 투런포를 치고 들어오며 축하를 받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7.03.23/

2015년 1월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에 위치한 텍사스 레인저스 연습구장.

야간 훈련이 한창이던 어느날 저녁.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4번타자였던 박병호가 타격 연습장 바닥에 쭈그려 앉아 누군가의 스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스윙이 정말 좋다"던 박병호는 "곧 신고선수 딱지 뗄 수 있겠는데?"라며 웃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열심히 방망이를 돌렸던 타자는 넥센의 외야수 허정협이다. 허정협은 2015년 스프링캠프에 신고선수 신분으로 참가했다. 넥센 구단을 통틀어 신고선수 신분으로 1군 캠프에서 훈련한 선수는 서건창과 허정협 둘 뿐이었다.

허정협은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어렵게 서울문화예술대 야구부에서 프로의 꿈을 이어갔다.

포기한 순간도 있었다. 대학교 재학 도중이었던 2010년에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오게 되면서 2년 동안 야구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도 수 차례. 그러나 허정협은 그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야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붙잡았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허정협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좌절과 실망이 더 큰 순간이었지만, 드래프트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넥센 구단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함께 했으면 좋겠다."

타고난 체력과 파워. 허정협은 신고선수 신분으로 입단한 직후 2014년 마무리캠프에서 당시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었고, 1군 캠프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병호의 말대로 그는 곧 정식 선수 신분이 됐다.

2015년부터 팀내에서는 기대받는 외야수였지만, 기회는 이제서야 찾아왔다. 자리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넥센은 이택근 유한준(현 kt 위즈) 고종욱 등 외야 경쟁이 치열한 팀이다. 때문에 허정협에게는 많은 출전 기회가 가지 않았고, 가끔 주어지는 기회는 스스로 '잘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망치고 말았다. 2015년 4경기, 2016년 13경기 출전이 그의 지난 2년간 1군 기록의 전부다.


11일 오후 서울고척스카이돔에서 2017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kt 위즈의 주중 3연전 첫 번째 경기가 열렸다. 넥센 신재영과 kt 주권이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5회 1사 1, 3루에서 넥센 허정협이 1타점 적시타를 날렸다.
고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7.04.11

하지만 올해는 출발부터 다르다. 캠프에서부터 꾸준히 좋은 페이스를 보여줬고, 시범경기에서도 홈런을 터트리는 등 활약했다. 개막 엔트리에 합류한 허정협은 치열한 외야 경쟁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들이밀 수 있게 됐다.

선발 출전 기회를 주면 '찰떡같이' 받는다. 지난 6일 롯데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포함해 4타수 2안타, 9일 두산전 4타수 3안타 3타점 그리고 11일 kt전에서도 4타수 3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해 무려 8타수 6안타다.

허정협은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한다. "이제는 1군 투수에게 조금 적응이 된 것 같다"는 그는 "그동안은 조급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지금은 감독님도, 코치님들도 편하게 해주셔서 마음을 놓고 한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격려를 받으니 오히려 더 잘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나 경쟁에 대한 승부욕은 타오른다. 허정협은 "나의 장점은 파워다. 장타력도 있다. 다른 외야 경쟁 선수들과 서로서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안주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돌고 돌아 1군 무대를 밟은 만큼 한 타석, 한 경기의 절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그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이자 경쟁력이다.

"저는 프로에 오는 것 자체도 힘들었어요. 1군에서 야구한다는 것은 감격스럽죠. 벅차요. 정말 간절하게 여기까지 왔으니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으니까요."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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