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임정우, 이리 좀 와봐. 와보라니까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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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감독의 목소리는 임정우가 가까이 다가오자 더욱 커졌다. 그리고는 임정우가 피하고 싶었을 것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전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LG는 10일 대전 한화전에서 9회초 마지막 공격 때 상대 마무리 투수 정우람을 공략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장 10회말에 임정우가 정근우에게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으며 1대2로 졌다.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지만, 임정우는 이 경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연장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원정팀은 끝내기 안타를 맞을 위험을 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마운드에 오르는 건 매우 큰 배짱을 필요로하는 일이다. 양 감독은 임정우라면 그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늘 예상대로 결과가 전개되는 건 아니었다. 믿었던 임정우가 무너졌다.
하지만 이걸 꼭 임정우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상대 타자인 정근우가 워낙 잘 치기도 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타구 방향이 약간만 왼쪽으로 갔어도 유격수 오지환에게 쉽게 잡힐 수 있었다. 여러모로 임정우는 불행했다. 양 감독은 그래서 더욱 임정우를 위로하고 싶었던 듯 했다. 그는 임정우에게 "블론 세이브 한 개도 안하는 마무리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또 하필 어제(10일)는 마무리들이 전부 얻어터졌더라. (정)우람이도 그렇고, 김세현(넥센) 박희수(SK)까지 다 나와서 얻어맞았더라. 원래 또 그런 날이 있어. 어제는 마무리들이 다 안되는 날이었던게지"라며 전날의 상황에 매몰되지 말라고 주문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임정우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큰 짐을 덜은 듯 "더 잘할 겁니다"라고 말한 채 되돌아섰다.
그리고 실제로 임정우는 곧바로 팀의 승리를 지켜줬다. 이 대화가 벌어지고 몇 시간 뒤. LG는 1-3으로 뒤지던 경기를 5-3으로 뒤집었다. 그리고 9회말 마지막 수비 때 임정우가 다시 나왔다. 임정우는 첫 타자인 이용규에게 우전안타를 맞았지만, 이후 대타 이종환-김태균-로사리오의 강타선을 모두 범타처리해 승리를 지켜줬다. 확실히 감독의 격려로 힘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